우리들의 중년, 힘내자~

그냥 조금 느리게 사는 것

by 바다 김춘식

낭패다. 뭐 어느 때부터 한두 번 일어나는 일도 아니어서 많이 놀랄 일도 아니지만 오늘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심적 충격이 좀 크다 해야겠다.


근거리용 안경을 낀 채로 퇴근하여 까막눈으로 쫄며 운전하기, 사무실에 차 열쇠 두고와 다시 올라가기는 진짜 부지기로 일어나는 흔한 일이고, 출근길에 휴대폰을 차에 두고 사무실에 올라가기는 거의 애교 수준이 되고 있다.


아무튼 오늘은 "무스 대체로 에프킬러"로 머리카락의 자존심을 세운 이후로 최대의 참사가 발생한 날이라 보면 되겠다. 아침, 사무실 도착 몇 분 전 깨톡이 막 울렸다. 엔간해서 연락이 없는 아내에게로부터 온 모양으로 시급성이 느껴지는 문자이다.

"밥은 안 가져가고~" "햇반은 있나~"

".................................................."


당최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머리에 스치는 낭패의 향기 ~ 황당. 그렇군. 아무 생각이 없었던지 도시락 밥통은 식탁에 모셔 두고 반찬통만 소중하게 챙긴, 간 큰 만행을 저지른 듯 하니 오호통재라. 각시는 신랑이 점심 굶게 생겼는데 애가 안 탈 수가 없을 테고, 아니 아내의 진심은 도시락을 준비한 정성의 희석에 웬수를 어찌할 수 없는 좌절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감히 못할 짓을 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잠시라도 내 손을 떠난 물건은 이미 넘의 것이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 되었고, 생각으로 시행한 일이 실제 시행되지 않은 사건이 늘어나고, 점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아니해야 할 일을 하는 시기가 되면 나이를 먹은 것이라 했거늘 바로 그분이 오신 게 아닐까?


코로나 시대에 예방주사를 맞은 후 온갖 몸의 변화, 아픈 곳이 있다 하면 사사건건 주사의 부작용으로 귀결되던 만, 하루하루 안 되는 일이 생기기만 하면 "나이 들어서"라는 핑곗거리로 쉽게 체념이 되어 버린다. 이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 듯, 모든 일은 나이 탓이 되고 있다.


나이가 드는 것은 그냥 "조금 느리고, 느리게 사는 것"뿐이라 했으므로 도시락을 잊었다면 그 까이것 외식으로 때우면 그만 인걸. 근데 솔직 내가 쓰는 글로도 위로가 안된다. 쭈글쭈글 손등, 늘어나는 목 주름살에 그 어떤 위로도 안 통하는 이치와 같다 하겠다.


도시락 밥통을 잊은 사소함에 일어난 나비효과에 가슴 아픈 짠한 중년이 아닐 수 없다. 짠하다. 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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