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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Jan 12. 2023

세월, 그 쓸쓸함에 대하여

연식이 오래된 기계를 사용한다는 것은 꾸준한 관리와 관심을 가져합니다. 사람이나 기계나 모두 세월의 흐름엔 장사가 없다 합니다. 맞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장사가 없는 듯합니다.


아직 현역으로 사용 중인 옛날 필름용 사진기들은 세월을 거 스르지 못하고 노후화와 접점불량 등 빈번하게 고장이 났습니다. 그때마다 오래전부터 알아온 "광주 카메라수리실"을 이용해 왔습니다. 인천에서 수도권이 아닌 전남광주에 수리를 보낸다는 것은 꽤 많은 신뢰가 쌓였다고 보아야겠지요. 입소문으로 시작된 인연이 10년 정도 되었으니 신뢰란 당연한 것 일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도 고장 난 사진기 한대를 보냈습니다. 셔터가 안 터지고 뷰파인더 LED가 들어오지 않은 고장이었습니다. 며칠 후에 돌아온 사진기의 셔터는 수리되었지만 LED는 여전히 고장이었습니다. 최종 점검도 하지 않고 보낸 것에 득달같이 화를 내고는 어쩔 수없이 재 수리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웬걸 다시 얼마 후 재차 돌려받은 사진기는 고장이 수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배달되어 옵니다.


황당한 상황에서 수리여부에만 관심을 두다 잠시 등한시한 택배 포장박스 안 충격완화용 뽁뽁이 사이에 은행 봉투가 삐죽 나와 보았습니다. 무심히 뭘까 싶어 살펴보니, 경이롭게 도 편지지에 수기로 수리를 못하겠으니 5만 원을 환불한다는 내용과 함께 진짜 현금 5만 원이 봉투에 넣어져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계좌 송금도 아니고 삐뚤삐뚤한 메모와 함께 현금을 보는 순간 화를 낸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불쑥 올라와 순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네, 수리하시는 분은 할아버지이십니다. 10년 전에 비해 목소리가 힘이 없어지셨고 이름 등 기억이 자꾸 떨어지십니다. 전화 목소리에서 나날이 느껴집니다. 그동안 해마다 전화할 때 혹시 안 받으시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사실 할아버지와 오랫동안 수리 거래는 했지만 뵌 적은 없습니다.


택배를 받은 다음날 바로 해외출장이 있었고, 연초에 바쁜 일이 몰려 처리를 미룬 마음의 짐을 지고서 오늘에서야 늦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왜 보내셨나? 반은 수리한 게 아니냐? 등 야몰 차게 따져 물었지만 기억이 안 난다 하시고는 돈을 보낼 필요 없다 사양하십니다. 진짜 기억이 안 날 수 있다는 생각에 또 한 번 울컥해서 그럼 3만 원이라도 보내드릴 테니 그리 아시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바로 3만 원을 송금해 드리고 나니 오랜 숙제를 해결한 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전화를 받아 주실지에 대한 걱정에 잠시 가벼워졌던 마음이 이전보다 더 무거워졌습니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습니다. 세월이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는 그건 참으로 쓸쓸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어도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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