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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May 23. 2020

감성을 숨기고 살았다

눈물의 씨앗은 감성

티브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다 우연히 마음에 팍 꽂히는 연속극 제목을 보았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범상치 않은 제목이 좋았지만 그 이후 잊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책을 살려고 인터넷 서점을 뒤적거리다 같은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는 지레짐작으로 연속극의 인기에 편성해 숟가락 하나 얹어 벌써 책으로 나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목에 마음이 뻿긴터라 장바구니에 넣을까 몇 번 고심은 하였지만 연속극에 묻어 갈려는 상술이다 싶어 포기했습니다.


사무실로 적당한 크기의 박스로 택배 배송이 되어 왔습니다. 최근 주문한 물건이나 택배를 보낸다는 분이 없었기에 의아해 송장 확인 결과 발송지가 서점이었습니다. 후다닥 박스를 열었더니 소설 두권, 그중 한 권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였습니다. 마음이 들킨 것처럼 깜작 놀라게 해 준 배송자는 종종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분이었습니다. 바로 전화해서 "오심즉여심"이란 말과 함께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나 이듬 때문인지 아침 다섯 시에 슬그머니 일어나 눈을 비비고 책을 들었습니다. 아침에 다 읽을 작정은 하지 않았는데 점점 장수가 넘어갈수록 잔잔한 감동에 눈에 눈물이 범벅이 되어 갔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 틀린 감성으로 영화보다, 뉴스보다, 책 보다, 신문보다, 비를 보다, 눈을 보다 몰래 울다 보낸 시간이 많았지만 부끄러워서도 이기도 하고 감성이란 게 안 감성적인 사람 눈에는 그냥 GR로 보이기에 표시 내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남자들은 여성호르몬이 증가하여 여성화되어간다 더니 맞는가 봅니다. 거의 매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감동이고 슬프서 눈가를 촉촉이 적십니다. 소설이 남들에겐 그리 감동, 감성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8시가 훌쩍 넘어 읽기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충만된 감정으로 시작된 아침의 기분으로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두 딸과 아내는 나의 상태를 알지도 못하고, 알아주지도 않기에 GR질을 하기 싫어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품에 대한 소통이 부족한 가족에 대한 평생 불만이기도 합니다. 그날도 충만된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했지만 금세 아내의 숨 가쁜 잔소리에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버렸습니다.


오랜만에 신파가 되게 해 준 책과 적절한 시기에 보내준 분이 고맙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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