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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 #1~2

by 작가C

#1

“고맙다, 창희야.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너무 고맙다.”

2년 만에 만난 승진이는 슬픔을 잠시 접어놓은 듯 한 모습으로 내게 인사를 했다. 나를 반기는 승진이를 보고 있으니 미안한 감정이 생긴다. 한국을 종종 방문할 수는 없었어도 종종 전화로 연락은 했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고맙기는. 당연히 와야지. 바로 비행기 표를 끊고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일단 조문부터 할게.”

“그러자.”

나는 매희가 있는 빈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국화 한 송이를 영정 앞에 올려놓고, 매희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승진이와 가족들을 위로했다. 영정을 뒤로하고 돌아서 나오는 순간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아이가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에 슬픔이 격랑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매희는 승진이의 하나뿐인 연년생 여동생이었다. 승진이와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동창으로 의형제처럼 지내온 사이다. 나와 매희도 오랜 시간 오빠, 동생 하며 지내온 사이였다. 매사 웃음을 잃지 않고 지내던 아이였다. 무엇이 매희를 죽음으로 내몬 것인가?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매희는 이렇게 허망하게 떠날 사람이 아니었다.

“창희야.”

“어, 승진아.”

“오늘 어디서 묶을 거야? 숙소는 어디 잡았어?”

“아니. 오늘 밤새 너랑 같이 있을 거야. 내일 발인을 마치면 바로 캐나다로 돌아가려고 숙소를 잡지 않았어.”

“안 그래도 되는 데.”

“어떻게 안 그러냐. 내 신경은 쓰지 않아도 돼.”

“자정이 좀 넘으면 문상객들이 거의 없을 거야. 그러면 나랑 간만에 어떻게 살았는지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 좀 하자. 소주가 있으니 괜찮으면 소주도 한 잔 하고.”

“그래, 그러자.”


#2

새벽 1시가 다 되어간다. 문상객들의 발걸음은 자정이 지나면서부터 잦아들었고, 지금은 나와 승진이, 그리고 승진이의 가족들만이 남았다. 승진이는 소주 한 병과 부침개가 담긴 접시를 챙겨와 내 곁에 앉았다.

“이제 더 올 사람은 없는 것 같아. 오랜만인데 소주 한 잔 하자.”

승진이는 내 잔과 자신의 잔에 소주를 채우고서 술을 권했다. 소주잔을 비우자마자 어찔함이 느껴졌다. 장거리 장시간 비행기로 이동을 한 탓인 것 같다. 피로가 내 생각보다 컸던 게다. 나는 순간 두 눈을 질끈 감고서 어찔함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창희야. 괜찮아?”

“어? 어. 괜찮아. 몸이 피로해서 그런지, 아니면 오랜만에 소주를 마셔서 그런지 어찔하네. 금방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승진이에게 그리 말하고서 조금 더 눈을 감았다. 몇 분이 지나갔을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어찔함이 사라졌다.

“이제 좀 괜찮아 진 거야?”

“응. 이제 괜찮아.”

“같이 밤을 새주지 않아도 되는 데. 괜히 미안하네.”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하냐!”

“그냥. 괜히 미안해서. 그나저나 캐나다 생활은 어때? 지낼 만은 해?”

“좋아. 행복해지려고 떠난 곳인데 한국에서 지낼 때보다는 좋아야지. 그런데 약간 외롭기는 해. 캐나다에서는 사람들이 일을 마치면 대부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든. 그런데 나는 가정이 없잖아. 어머니를 모시고는 있지만, 결혼을 해서 내 가정을 꾸리고 있지는 않으니까.”

“거기서는 여자 만날 기회가 없어? 직장에 같이 다니는 캐나다 아가씨나 한국인 교포가 있을 거 아니야?”

“쉽지가 않더라고. 캐나다 여자들에게 동양인 남자는 인기가 좋은 편이 아니거든.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한국인 교포들이 거의 없어서 그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내가 종교가 있다면야 교회 같은 곳에서 여자를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도 알고 있다시피 나는 종교 가지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연애하고 결혼하는 건 캐나다나 한국이나 똑같이 쉽지 않구나.”

“뭐, 다르지 않지. 인종이나 국가, 문화만 다를 뿐 같은 사람이잖아. 그래도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만족해. 적어도 한국에서 지낼 때처럼 ‘내가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존에 대한 물음은 안가지 거든. 물론 캐나다로 이민을 오면서 포기한 것들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보다는 좋아. 캐나다에서 박사로서의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직업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야. 한국에서는 허울만 좋은 박사였지, 정당한 처우나 직함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매 학기마다 생계를 걱정하던 시간강사에, 기업체 기간제 근로자에, 나중에는 월 50만원도 벌기 힘들었던 프리랜서까지.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이러려고 공부를 했던가?’라는 자괴감만 들었으니까.”

“그래. 너 참 많이 힘들어 했었지. 그러고 보니, 네 안색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 있을 때 매일 달고 살았던 편두통이 지금은 사라졌어. 어릴 때는 같잖은 애국심에 이민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너무 늦지 않게 캐나다로 이민을 잘 왔다는 생각을 해. 한국 정부, 정치인들, 기득권층은 많은 국민들이 이민을 가고 나면 뒤늦게 걱정하고 후회하겠지.”

“나중에 한국에는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나 남아있겠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말하는 사람 무안해지게.”

“그게 사실인데. 뭐…….”

“참, 승진아. 도대체 매희는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야?”

승진이는 한 동안 답하지 못했다. 마주한 그의 눈에서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해 보였다. 눈물이 맺히려는 순간 승진이는 내게 잠시 밖에서 바람 좀 쐬고 와야겠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괜한 것을 물어봤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 편이 불편했다. 승진이는 몇 분 후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식, 그 간 그렇게 더럽고 어려운 일들을 겪었으면 말을 했어야지. 바보같이 그런 일을 왜 참아. 딴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참고 또 참았던 것 같은데, 결국은 이런 꼴이 되었잖아. 바보 같은 자식. 불쌍한 자식.”

“무슨 일이었는데?”

“매희, 그 녀석 지난 1년 간 직장 상사들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었더라고. 그리고 이 녀석 자살하기 약 3달 전에는 성폭행까지 당했었더라. 아, 씨발! 개새끼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 새끼들 사지를 다 찢어서 죽이고 싶어.”

“아니, 어쩌다가…….”

“창희야.”

“응.”

“나를 더 화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

“글쎄, 나는 잘…….”

“이 나라의 법, 그리고 법관,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새끼들이야. 매희가 다니던 회사는 매희를 건드렸었던 새끼들을 대충 조치하고서 오히려 매희에게 소송을 걸어버리더라.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뒤집어 씌워서 말이지. 그리고 매희를 건드렸었던 새끼들은 재판에서 가벼운 형량만 받았어. 성폭행을 한 새끼는 재판에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고, 되려 매희는 행실이 원래 그랬었던 여자로 취급되어지더라.”

“그게 말이 돼!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결국은 다 돈인 거야. 비싼 변호사들 선임해서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거지. 대한민국 정말 좆같아. 사람들이 그러잖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우리처럼 돈이나 힘없는 사람들은 몹쓸 짓을 당해도 법의 보호를 못 받는 거야. 죽거나 당한 사람들만 불쌍한 거지. 씨발.”

“매희가 처음 그런 일을 겪었을 때, 너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도움을 받았더라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희는 계속해서 계약직 생활을 했었어.”

“응. 그건 알고 있었어.”

“이 녀석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생각보다 컸었나봐. 이번 회사에서는 2년 이후 근무평가를 통해서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는 말에 이를 악 물고 버텼었던 것 같아. 그런데 부서의 정규직 팀장, 과장이라는 새끼들은 그것을 약점으로 매희를 괴롭혔던 거야. 온갖 부당 행위들, 성희롱, 성추행, 끝내 성폭행까지. 그깟 정규직이 뭐라고! 바보 같은 게 말이지.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정 안되면 나랑 장사라도 하면서 살았으면 됐는데. 죽기는 왜 죽느냐고. 누구 좋으라고 말이야.”

승진이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매희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는지 연거푸 소주를 마셨다. 나는 말없이 승진이의 소주잔을 채워주었다. 시계 바늘은 새벽 3시를 가리켰다. 이 시각에는 구천으로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영가들이 자신에게 사연이 있는 장소나 사람을 찾아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매희도 아직 구천으로 떠나지 않았다면 이곳에 우리와 함께 있을 터. 나는 빈소의 매희 영정을 향해 소주 한 잔을 권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매희야, 이 술 한 잔 받고서 힘들고 억울했던 삶 이제는 잊고 떠나렴.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게 살아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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