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던 겨울이 지나면서 비로소 얼음이 녹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길가에는 노오란 개나리가 만개하고 하얗거나 분홍빛인 벚꽃들이 하나둘씩 꽃봉오리를 새침하게 틔워 보인다. 공기마저 선선해 나들이 나가기 딱 좋은 시기다. 따뜻한 남쪽에서 불어오는 마파람이 조금씩 움직이고, 겨울 한창 반도를 휘몰아치던 높새바람이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한다. 새로운 봄바람은 우리 주변에서부터 먼 대륙으로까지 광활한 영역을 넘나들며 불고 있다. 우리 동네 개나리의 꽃잎을 간질이기도 하고, 벚꽃 가지를 흔들어 벚꽃잎이 흐드러지게 떨어뜨리기도 하면서.
벚꽃은 3월 말에 봉오리를 피웠다가 봄비와 함께 다가온 세찬 바람에 그만 우수수 꽃잎이 떨어지고 말았다. 연약한 벚꽃은 얼마 꽃도 펴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벚꽃은 억울하지가 않다. 바람이 벚꽃잎을 민들레 홀씨처럼 저 먼 곳까지 데려다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년이면 또다시 꽃을 피워낼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이들은 잠깐 상황이 나아지다가 다시 힘들어지면 그만 자포자기하고 만다.
"난 인생을 헛살았어. 도저히 기사회생할 수가 없어. 이대로 끝인 건가."
그러나 아직 나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찰나의 어떤 순간을 위해서 살아가는 생명들 또한 많으니. 그리고 기억하련다. 찰나의 기쁨은 영원하지 않으며, 찰나의 고통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바람과 벚꽃에게서, 자연에서 배워 보련다. 인생은 유한하나, 유한한 만큼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소망을 하나씩 품고 살아보고 싶다. 내 평생에 한 가지 이상의 소원을 품으며 그것들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특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바람은 따뜻해지고 습해져 간다. 대기의 습도는 점점 높아져가고 드디어 여름이 온다. 대지는 초록 물결로 바뀌고 대기는 모여 구름을 만들고 지상으로 비를 뿌린다. 온 세상이 수도꼭지를 왕창 틀어놓은 듯 물 천지다. 비와 함께 바람이 커져 거대한 바람이 불어닥친다. 태풍은 대지 위의 물상들을 뒤흔들어 놓는다.
내 인생에 있어 언젠가 한 번쯤은 큰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미리 준비할까. 준비하고 대비하는 자는 현명하게 위기를 극복할 것이요, 방관하고 무시하는 자는 결국 위기에 닥쳐 망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매년 불어오는 태풍을 예방하듯 우리도 우리의 위기 시스템을 관리할 무언가를 만들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한 차례가 비바람이 닥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벼 이삭이 황금빛 빛깔을 뽐내고 있고, 먹음직스러운 새빨간 사과는 나무 위에 주렁주렁 달려 있다. 바야흐로 추수의 시기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곡식이 더 여물도록, 과실이 더 매달리도록 선선한 가을바람인 하늬바람은 불어온다.
우리에게는 성취의 시기가, 결실의 시기가 저마다 찾아온다. 누군가에게는 자손의 번성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사업의 성공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그런 것일 수 있겠다. 저마다 이렇게 찾아오는 행운이 갑작스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오랜 소망과 그에 따른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의 열매는 우리 것이 될 수 없다. 바란다면, 소망이 있다면 내 인생을 걸어 끊임없이 도전하는 길이 왕도다. 순수함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성취의 길은 멀지 않을 것이다.
청명한 대기는 어느새 북쪽에서 불어오는 높새바람에 의해 점령당해 버리고, 추운 칼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의 입구에 다다른다. 동물들은 동면으로 들어가고 식물들은 메말라 죽어가거나 앙상하게 말라간다. 생명들은 그 불씨가 꺼져 가거나 서서히 사그라 들어간다.
노년의 시기에 접어든 우리는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나온 나날에 후회하며 우리 앞에 놓인 죽음을 피하려고 도망만 칠 것인가. 그렇다면 무서운 죽음을 피해 어디로 도망을 갈 것인가. 우리 인간은 죽음을 친구로 둘 수는 있어도 죽음을 적으로 둘 수는 없다. 떳떳하게 살았다면 죽음을 앞에 두고도 당당하게 "나 인생 한 번 잘 살았다." 하며 죽을 수 있을까. 죽음이 아니어도 인생의 전환기 즈음에 한 번씩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어떨까.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며 나를 반성하고 다시 새로운 나를 다짐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