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에서 극복하기
요즘 여러 날들을 허송세월로 보내고 있는 나에게 있어 '나다움'이란 것은 무엇일까. 뭔가 '나'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시간의 무한 반복 속에, 생활의 익숙함 속에 나를 떠넘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상황은 나에게 깊은 우울과 스트레스로 남았고, 그 우울과 스트레스는 내 생활을 쳇바퀴 돌 듯 기계적으로 만들 뿐이었다. 무기력한 부지런함. 그저 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나의 둔탁한 몸을 움직이기만 할 뿐이었다. 이것이 뉴스에서 말하는, '코로나 블루'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우울함만 내 생활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만은 아니었다. 내 생활은 기계적이었지만, 그 기계가, 부품이 뭔가 삐그덕거리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요즘 나를 괴롭히고 있는 그 삐그덕거리는 불안한 느낌. 그것은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시원스럽게 하고 있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몇 날 몇 일 몇 주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고통스러워하고 불안해하고 있을까.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요즘 들어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들은 극소수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첫번째는 친구들과의 만남. 코로나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만날 수 없었던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푸는 것이었다. 친한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면서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다시 우정을 쌓아나가는 일. 그것이 요즘 들어 한없이 그리워졌다. 두번째는 친구나 애인과 함께 여행 떠나 보기. 포항이든, 제주든 가보려고 했던 장소로 여행을 떠나 보고 싶다. 코로나 걱정과 출근 걱정을 하지 않고 3박 4일 정도 여유있게 푹 쉬다 오면 그야말로 스트레스가 싹 달아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세번째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코로나 시국이나 직장 문제 때문에 현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마지막 세번째 소원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덜 받으니, 노트북만 있다면, 아니 종이와 펜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나만의, 나다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려는 태도에서, 나는 F, 즉 낙제였다. 글을 쓰고 싶다고 말로는 그렇게 떠들어댔으면서 실상은 일이 힘들다고, 기분이 안 좋다고, 잠을 좀 더 자자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있었다. 책 읽기도 글쓰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독서와 글쓰기는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둘 다 내 게으름의 희생양이 되었다. 나는 그럴수록 더 이상 나다운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자기다움을 드러내기 힘들어졌다. 그러자 점점 글을 쓰는 게 힘들어지고 버거워지고 지겨워지고 끝내는 쓰면 뭐해 하는 무력감까지 찾아왔다. 나는 모임에서도, 브런치에서도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몇 주가 지나고 두 달이 되어갈 즈음,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글쓰기에 재미가 들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도 글을 미친듯이 써내려가고 있었던 그때의 기억. 손님이 오면 일을 하고, 손님이 가고 혼자남으면 다시 글을 썼던 그때의 나.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제일 먼저 노트북 스위치부터 켰던 나. 글짓기 모임과 브런치 창을 띄워놓고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글을 업로드했던 나. 그때를 생각하면 매일매일이 즐거웠던 것 같다. 매일매일이 나에게 살아숨쉬는 오늘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기계적이지 않았고, 나사 하나가 빠져나간듯이 삐그덕거리지 않았고, 우울과 스트레스가 나를 지배하지도 않았다. 그때의 나를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다시 손을 움직여 타이핑을 시작한다. 그리고 카페에 글을 쓰고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그렇게 해서 나다움을 증명하고 싶다.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