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봄을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라 말하고, 겨울을 시련과 상실의 계절이라고 표현한다. 왜 겨울은 시련과 상실의 계절이 되어야만 했던가. 그것은 자연의 순환과 반복을 통해 알 수가 있다. 겨울이 오면 모진 칼바람과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활동을 잠재워 버린다. 뱀과 곰을 비롯한 동물들은 추위를 피해 동면에 들어가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을 가진 채로 추위를 견뎌낸다. 말 그대로 인고의 기간. 고통을 견뎌내는 기간인 것이다. 그 인고의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강물은 얼음을 깨고 동식물들은 다시금 활동하기 시작한다. 생명이 약동하고 생명이 생명을 잉태하는 생산의 계절, 봄이 바야흐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봄은 그저 막연하게 오는 것이 아니다. 겨울에 겪었던 시련과 상실, 그 고통들을 회복하고, 상처에 약을 바르듯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봄이다. 과거의 잘못되었던 행태들로부터 분연히 떨쳐 일어나는 과정이 봄이요, 과거의 상처들을 품어내고 더 단단해지는 과정이 봄이다.
그래서 봄은 강하다. 1980년 서울의 봄이 그랬듯이. 시련을 견뎌내고 상실을 경험한 강한 계절이다. 이 계절을 우리는 청춘이라고도 부르며, 많은 가능성을 가진 젊은 세대들을 청춘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들은 봄을 닮았다. 봄의 생명이 약동하는, 그 거대한 에너지가, 무한히 열린 가능성이 말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학입시, 취업, 내 집 마련, 결혼, 육아 등 가야 할 길이 첩첩산중이다. 입시지옥에서 살아남은들 취업난이 기다리고 있고, 취업해도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내 집 마련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이제 선택이 되었고, 비혼 주의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아이 하나 기르는 것도 부담돼서 아예 낳지 않는 부부들도 있다. 말 그대로 추운 겨울의 연속이다.
지구온난화로 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겨울을 견뎌내고 생명을 잉태했던 봄은 이제 그 힘을 잃고 있다. 이것이 우연일까. 봄을 닮은 청춘들도 마찬가지 신세다. 청춘들은 각자의 고된 삶에 치여 파릇파릇한 잎새 하나 내보이지 못하고 시들어만 간다. 청춘들이 설 자리는 과연 어디일까.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 이어, OECD 국가 중 2030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게 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단지 '청년이 미래'라는 말은 정치인들의 입에 발린 말들로 치부되는 낡은 슬로건에 불과한 걸까. 청춘들에게 새로운 봄은 과연 올 수나 있을까 싶다.
그러나 필자는 새로운 봄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겨울의 모진 칼바람과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뎌낸 강력한 생명력의 봄을. 그리고 언젠가 각자 정상의 자리에서 화려하게 활약할 청춘들을. 매번 오는 봄이 예전의 봄이 아닌, 새로운 봄으로 다가오듯이 우리네 인생에도 새로운 도약의 시기가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