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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한다는 것이란...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

by 제갈해리

올해 설날에는 삼촌으로서 처음으로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주었다. 어느새 30대 중반에 접어든 삼촌이건만, 변변치 못한 직장을 다니고 있는 탓에 명절마다 사촌 형, 누나와 함께 찾아오는 오촌 조카들에게 체면이 서질 않았다. 어른들도 요즘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던 터라 내가 그동안 세뱃돈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씀을 보태지 않으셨고, 아버지도, 엄마도 별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속으로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내가 성장해주길 바라시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도 이제는 제법 머리가 커서 알고는 있다. 그러나 눈치껏 알아챈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었다. 여전히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편의점 알바로 생활비를 벌고 있었고, 글을 쓴다는 핑계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배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진정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매일 밤을 수도 없이 고민했다. 고민의 끝에는 항상 책임이라는 것이 나를 괴롭혔다. 부모님이 점점 늙어가시고 나도 생계의 일부분을, 아니 전체를 책임져야 할 때가 분명히 올 것이었다. 그러나 편의점 알바만 해서는 부모님께 용돈 한 번 제대로 드릴 수가 없었고, 생활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래도 적게나마 적금을 붓고 있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는 것도 어마어마한 술값 걱정에 피하게 되고, 식비도 아까워 편의점 폐기 음식들로만 때우는 현실이란.


그래도 과거 20대 때의 나를 돌아보면 지금 나의 생활은 많은 성장이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주색에 빠져 흥청망청 돈을 쓰고 다니고 택시비도 없는 주제에 택시를 타고 집 앞으로 와서 부모님께 택시비를 보태달라고 떼쓰던 철없는 어린아이의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내가 벌어 내가 감당하고 책임지는 시기에 와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 했다. 다른 누구도 날 대신해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부모님조차도 이제는 내 뒤치다꺼리를 할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인생의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고, 그렇게 사시는 것이 온당하다. 언제까지 자식 걱정으로 스트레스받으시면서 살 수는 없다. 이제는 내 앞가림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진짜 효도가 아닐까 싶다.


설령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내가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이 편돌이라고 깎아내리기는 하지만, 편의점 일도 다른 일들만큼이나 신성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편의점 알바의 페이는 적다. 그러나 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편의점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고객들의 소비성향이 어떤지, 고객에게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어떤 일이든 그 속에서 사명을 가지고 열심히, 노하우를 익혀 빠르게 해낸다면 어떤 곳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토요일만 일했던 근무시간은 1년 사이에 어느덧 주 6일 근무로 바뀌어 있었다. 사장님이 성실히 근무하는 것을 보시고 나를 믿고 일을 맡겨준 것도 있었다.


글을 쓰는 것도 일을 해나가는 것처럼 조금씩 성장이 이뤄졌으면 한다. 아직 2편의 단편소설밖에 완성을 못했고, 일을 핑계로 독서도 게을리하면서 요즘 들어 글쓰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편의점 알바만큼 글쓰기에 더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진정 작가로 성장하고 싶다면 아르바이트에 맞춰져 있는, 올빼미 같은 나태한 생활을 바로잡고 글쓰기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독서도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차일피일 읽기를 미루지 말고 일주일에 2권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풍성한 독서에서 많은 소재와 영감이 나올 수 있을 테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어른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에 빠져 있었지만,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과거에 비해 책임을 다해 내 앞가림을 하려 애쓰고 있었고, 조금씩 내 미래를 계획해 나가고 있었다. 아직 부족한 점이 한가득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주면서 느꼈던 기분은 단지 삼촌으로서 으스대고 싶었던 것이라기보다는 어른으로서 도리를 다하고 책임을 지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가 내게 잘했다 칭찬해주신 것이 어른으로 인정해주신 것 같아서 정말 감사했다. 앞으로 어른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내 인생을 착실히 살아나가도록 노력하자. 성장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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