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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하일기 15화

나의 낭만 닥터와의 작별

2025년 1월 20일 월요일

by 제갈해리
나의 낭만 닥터와의 작별

매일 복용하던 고혈압, 당뇨, 빈뇨 약이 다 떨어져 얼마 전에 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진료를 재예약했다. 원래 1월 초에 예약되어 있었는데, 이런저런 일과 사정으로 미루고 미루다 1월 하순이나 되어서야 재예약을 잡게 되었다.


다행히 먹던 약이 남아 있어서 2주가량을 버틸 수 있었는데, 이미 약을 다 먹었다면 혈압과 당 수치가 어찌 됐을지 참... 지금 생각해도 난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자신의 건강을 제일 먼저 신경 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진료 일정을 차일피일 미뤄서 이제야 진료를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예약이 바로 잡혀 오늘 오전 진료를 받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7시에 일어나 8시까지 성모병원 채혈실로 가서 혈액검사를 받고 난 후, 10시 5분 진료를 받았어야 하는데, 젠장... 늦잠을 자서 8시에 눈이 떠져 버렸다. 나는 아침약(기상 직후 먹는 고혈압, 당뇨약)을 먹고 나서 부랴부랴 씻고 나서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저번 주에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토요일의 일기를 적고 나니, 어느새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병원 채혈실에 들어가 피를 뽑고 나니, 10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전날 자정부터 8시간 넘게 금식을 하다가 드디어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병원 근처의 설렁탕 파는 음식점에 가서 특설렁탕(보통 설렁탕의 곱빼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을 주문했다. 반찬으로 나온 섞박지와 겉절이 김치를 가위로 자르고 나서 설렁탕과 공깃밥이 나오자, 밥을 설렁탕에 말아서 허겁지겁 마치 흡입하듯 국밥을 먹었다. 피를 뽑아내고 먹는 거라 그런지 뭔가 에너지가 보충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맛있게 설렁탕을 먹고 나서 성모병원 가정의학과 대기실로 가서 간호사 선생님께 혈액검사가 늦어져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오전 중에 진료가 가능할지 여쭤보았다.


"10시에 혈액검사를 하셨으니, 11시 30, 40분이면 검사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혈압과 체중 재시고, 조금 기다리시면 진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두 번째 일기(1월 19일 일요일 일기인 '새 식구를 맞이하며')를 뚝딱 금세 작성해 냈다.


11시 30분쯤 간호사 선생님이 내 이름을 호명하셔서 나는 진료실로 들어가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제 1월 말을 끝으로 성모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이직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도 2년 동안 계속 만나왔고, 내 병을 관리해 주시던, 담당 주치의라고 한다면 주치의이신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니, 못내 퍽 아쉬웠다.


"선생님 진료를 못 받게 돼서 아쉽네요."

"저도 그렇네요. 그래도 앞으로 건강관리 잘해서 건강해져야 해요."

"네."


의사 선생님은 혈액검사 수치라든가, 내 건강습관 등을 컴퓨터에 상세하게 기록하시면서 매번 비교해 어떤 수치와 습관은 나아지고 있고, 어떤 수치와 습관은 좋지 않다고 말씀해 주시곤 했는데, 나는 그런 의사 선생님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모든 면에서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따르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행동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는 당화혈색소 수치가 2개월 전 6.6에서 지금은 7로 올라갔어요. 당뇨가 조금 악화된 거예요. 체중은 84kg에서 80kg로 빠졌는데... 아무래도 잘못된 식습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아침에 라면을 먹기는 해요."

"라면 몸에 되게 안 좋아요. 탄수화물 덩어리라... 될수록 안 먹는 게 좋아요."

"알겠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건강에 대한 조언과 수치 결과를 꼼꼼하게 챙겨 주셨다. 나는 그런 의사 선생님에게 문득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진료가 끝나고 진료실에서 나올 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전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감사합니다."라며 내 인사에 화답하셨다.


진료실에서 나와 간호사 선생님께 수납 용지를 받고 다음번 진료(다음번에도 혈액검사가 예정되어 있었다)에 대해 설명을 듣고 수납기에서 진료비 정산을 했다. 그러고 나서 병원 근처 약국(처방약을 기다리는 대기 환자들로 몹시 붐볐다)으로 가서 고혈압과 당뇨, 빈뇨 약을 처방받았다.


오늘 오전에 병원 진료를 받으면서 내 건강을 위해서 스스로 식습관 조절과 다이어트를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그리고 그동안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의사 선생님이 어떤 분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의사 선생님처럼 좋은 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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