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천재 엘리트 양수
학창 시절에 보면, 잘 생기고,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소위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친구들이 있곤 했는데, 그런 친구들은 모든 엄마들에게 있어 자식과의 비교 대상이 되기 마련이었다. 나도 초등학교 때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는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 목사님의 아들이었다. 목사 아들 친구는 잘 생기기도 했고, 공부도 상위권이었고, 성격도 정말 착하고, 배려심 많은 그런 친구였다. 그 친구는 매번 학급의 반장이 될 정도로 주변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의 신망이 두터웠는데, 모두가 그 친구의 행실을 칭찬하고, 높게 대우하는 것을 볼 때가 많았다.
나도 어릴 때부터 상냥하고 친절하던 그 친구를 참 좋아했는데, 나중에 성인이 되어 그 친구의 페이스북에 적힌 글을 보고, 적잖이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금은 자세히 하나하나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글의 대략적인 내용은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것이었다. 글 속에서 친구는 '동성애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동성애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라는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내가 동성애자인 것을 안다면 목사님 아들인 그 친구는 신의 뜻이라는 명목으로 나를 회개시키려고 하거나 동성애 전환치료를 시도하려고 할지도 몰랐다. 아니면 내가 동성애자인 것을 혐오해 나를 마구 욕하거나 나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리든지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선수를 쳐 그 친구의 페이스북 계정을 차단하고, 그 친구와 연락을 끊었다. 그 친구와의 인연은 단지,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까지일 뿐이었다. 그 친구는 학창 시절에는 우리의 엄친아였지만, 이제 더 이상 나의 엄친아가 아니었다.
엄친아라고 해서 모든 점이 우월하고, 월등하다고 볼 수만은 없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엄친아의 이면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실망감. 더 나아가서는 크나큰 배신감마저 들기도 한다. 누구나 단점은 하나씩 가지고 있겠지만,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여기던 사람에 대한 실망감은 곧 적개감으로 바뀐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이 인물처럼 말이다.
삼국지에서 엘리트 코스를 제대로 밟아온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양수다. 양수는 후한 말기 중신인 태위 양표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학문과 식견으로 주부 직책을 맡아 승상부에서 조조를 보좌했다. 그는 아는 게 많고, 언변이 능한 데다가 재주도 있고, 생각하는 것도 민첩했다. 그는 그만큼 엘리트로서, 당대에 똑똑하다고 일컬어지던 공융, 예형 등과 교류할 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특히, 남이 떠올린 것을 알아채고서 한 발 먼저 처리해 주는 일이 빈번했는데, 삼국지의 또 다른 천재인 조조와의 일화에서 그것이 잘 드러난다.
하루는, 조조가 자신의 명령으로 꾸며진 화원을 구경하러 갔는데, 불만족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하인들이 묻자, 아무 말 없이 화원 문에 活(살 활)자만을 쓴 채, 그대로 휙 돌아가 버렸다. 조조가 그걸 왜 써 놓았는지 아무도 이해를 못 하고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양수가 지나가다 끼어들어서는 상황을 듣더니, 門(문)에다 活(활)자를 써 놓으면 濶(넓을 활)이니, 화원이 지나치게 넓어 휑해 보인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에 정원사들은 나무를 사와 화원의 폭을 좀 더 촘촘하게 좁히고, 산책로를 만들어 좀 더 아담해 보이도록 개조했다. 며칠 뒤 조조가 다시 왔다가 화원을 보며 이제야 알맞게 되었다고 만족하고는 어떻게 뜻을 알았냐고 묻자, 사람들이 양수가 지나가다 말해주었다고 대답했다. 조조는 그 말을 듣고 정원사들이 고민할 몫을 양수가 채갔다는 생각을 해 조금 언짢아한다.
또, 양수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일처리를 잘해 항상 빨리 끝내고 놀러 다니곤 했는데, 하인들이 승상(조조)이 오시면 어떻게 하냐고 묻자, 양수는 쪽지 3개를 주며, 승상이 공문 처리에 대해 물으면 몇 번째로 어느 것을 보라고 했다. 후에 정말 조조가 와서 한 질문들은 양수가 준 종이에 답까지 그대로 적혀 있던 것들이었기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조조는 하인들의 몫을 양수가 대신해줬다는 생각을 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어느 날, 지방에서 조조에게 수(酥)(과자의 한 종류)가 진상되었는데, 조조는 수를 한 입 먹고 슬쩍 장난기가 발동해 합 위에다가 일합수(一合酥)라는 글자를 써 놓고 책상머리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양수는 이 글을 보고, 숟가락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이에 노한 조조가 양수에게 왜 먹었느냐고 꾸짖다가 한 사람이 한 입씩 먹는 수(一人一口酥)라고 쓰신 승상의 뜻을 어찌 어길 수 있느냐는 양수의 말에 웃어재끼고 넘겨버린다. 그러나, 양수가 자기 속내를 알아차린 것을 알고,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 번은, 위왕 조조가 아들 조비와 조식의 재간을 시험해 보려고 두 아들을 밖으로 내보낸 다음, 업성의 궁궐을 지나가라고 시키면서 궁궐의 문지기에게 그 누구도 성문 밖으로 보내지 말라고 명령했다. 조비는 궁궐을 통과하려다 문지기가 막자,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이 말을 들은 조식은 자신에게도 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 짐작해 양수에게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자, 양수는 왕자께서 왕명을 받들고 나가려는데, 막으려는 자가 있으면 베어버려도 된다고 했다. 이에 조식은 그 말대로 막는 문지기를 베었지만, 조식의 재간에 놀라워한 조조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순진하게 양수가 가르쳐 주었다고 말해버린 탓에 조조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속으로는 양수를 멀리하게 되었다.
또, 조조는 자신이 암살당할까 두려워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은 꿈속에서 사람을 죽여대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거짓말을 했다. 어느 날 조조가 장중에서 낮잠을 자다가 일부러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이걸 본 근시가 조조를 부축해 세우려 하니, 조조는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뛰어 일어나 칼을 뽑아서 그를 베고 다시 와상 위로 올라가 잤다. 조조는 한참이 지나서야 일어나서는 짐짓 놀라며 누가 내 근시를 죽였냐고 물었다. 여러 사람들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조조가 통곡하면서 후하게 장사를 지내 주게 하니, 사람들은 모두 조조가 정말로 꿈속에서 사람 죽이는 버릇이 있는 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양수만은 그 사람을 장사 지낼 때 죽은 내시의 시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승상이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대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라고 한탄한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더욱 양수를 미워하게 되었다.
양수는 조비와 조식 간의 후계자 다툼에서 조식 편을 들었는데, 조비를 위해 계책을 잘 내는 오질이 비단을 나르는 바구니 속에 몸을 숨겨 대궐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양수는 즉각 조조에게 이 사실을 고했고, 조비에게 대응책을 질문받은 오질은 다음에는 진짜로 비단만 들여오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하자 비단만 들어 있는 것을 보고받은 조조는 양수가 조비를 모함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조조는 조식을 총애했는데, 조비와 조식 모두를 자주 방문했다. 양수는 도움이 되기 위해 조식에게 조조가 물어볼 10개 모범 답안을 만들어 주었고, 조조가 질문하자, 조식은 그 답을 그대로 읊어 총애를 얻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후에 양수가 한 짓임이 드러났기에 조조는 양수를 미워했다.
조조가 원정을 가는 길에 조아비(曹娥碑)에 적힌 '황견유부 외손제구(黃絹幼婦 外孫虀臼)'라는 채옹의 글귀를 보고, 그 뜻을 몰라 주위 책사들에게 그 뜻을 묻는다. 책사들이 양수가 그 뜻을 안다고 하니, 지금까지 양수에게 계속 당했던 조조는 자신이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는 삼 마장(30리)을 간 뒤에야 그 뜻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조조는 일단 양수에게 먼저 해석한 바를 말하게 한다. 양수가 내린 답은 절묘호사(絶妙好辭: 아주 뛰어난 문장)이었고, 조조도 웃으며 자신의 생각과 똑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조는 양수의 재주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한중 원정 중에 있던 계륵의 일화가 도화선이 되어 노한 조조가 양수를 참수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실제로, 양수의 죽음은 후계자 구도를 염려한 조조의 숙청일 가능성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양수는 조식의 책사로, 장차 조조의 후계자인 위왕이 될 세자 조비의 최대 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양수는 삼국지에서 손꼽히는 엘리트 가문 출신에, 천재였다. 소위 말해, 엄친아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뛰어나다는 오만에 사로잡혀 군주인 조조 앞에서 총명함을 한껏 드러내어 결국 목이 잘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남보다 머리가 좋다고 오만방자하게 행동한 엄친아의 최후란, 그런 것이었다. 우리는 양수의 일화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엄친아라고 해서, 엘리트라고 해서 안하무인으로 코를 높이 든다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기 마련이다. 반면, 자신의 부족함과 단점을 인정하고, 겸손해진다면 주위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을 것이다. 삼국지의 엄친아이자, 엘리트 양수와 앞서 말한 목사 아들 친구는 어쩌면 틀에 박힌 천재들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