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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하일기

나만의 가시를 품을 수 있는 시간

2025년 10월 7일 화요일

by 제갈해리

어제는 새벽 3시가 다 되어 잠에 들었는데, 악몽을 꾸어 새벽 5시 반에 잠에서 깨어 담배를 몇 모금 피우고, 다시 잠이 들어 아침 7시 반에 완전히 일어났다. 내가 이렇게 잠을 설친 이유는, 아마도 어제 일로 인한 여파가 큰 탓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 나의 불안은 언젠가 다가올 현실일지도 몰랐다. 어제는 내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데 생각이 귀결되는 것만 같았지만, 오늘 깨어나 일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떠오른 결과,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만 키운다고 해서 동생의 가족에게서 인정과 존중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한참 모자라고, 단순한 생각일 것이었다. 능력만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성소수자임에도 우리 가족 구성원으로서 살아내려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케어할 줄 알아야 한다. 본연의 모습(성소수자라는 자각)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알고, 내 인생을 관리(건강 관리, 일적인 관리, 인생 계획)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엄친아나 엘리트라고 불리는 성소수자들을 보면, 그들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에 차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성소수자인 것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고,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나 무엇이든 추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가끔 퀴어축제에서 활동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저들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기에는 자존감이 바닥이었고, 내 커리어에 대한 자신도 없었다.


계속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 같아 자꾸만 나를 안으로 옭아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이러지 말아야지, 스스로를 아껴야지, 사랑해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움츠러드는 자신을 어쩔 줄 모르겠다.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결국 조현병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일찍이 익혔다면, 아니 익힐 수 있었다면 조현병도, 우울증도, 불안증도 찾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우울한 마음도, 불안한 마음도, 분열하는 정신도 다 내 마음의 일부분이다. 내가 싫어도, 미워도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의 결점들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나 자신을 다독거려 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 같다. 선인장 가시처럼 잔뜩 성이 난 것처럼 예민한 상태인 내가 잠시 사방으로 뻗어 있는 주파수를 접어두고, 나만의 가시를 품을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이 바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오늘도 글을 쓰면서 나를 위로하고, 다듬고, 품어준다. 이런 걸 성장통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글을 쓰면서 성장해 가는 중이다. 오늘도 이렇게 건강하게 글을 쓸 수 있음에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글을 마친다.


나만의 가시를 품을 수 있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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