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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Dec 23. 2021

이 세계의 메시아

스스로 메시아라 칭하는 남자


  나는 이 세계의 관리자이자, 메시아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이 세계에는 신에 버금가는 관리자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관리자들은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 따라 세계를 관리한다. 예를 들어, 음양오행이 그 관리자들 중 하나이다. 동쪽의 청룡은 음양오행상 나무 목(木)에 해당하며, 자연의 구름을 관장하고 인간의 운을 담당한다. 서쪽의 백호는 음양오행상 쇠 금(金)에 해당하며, 자연의 바람을 관장하고 사후 세계와 인간의 명을 담당한다. 남쪽의 주작은 음양오행상 불 화(火)에 해당하며, 자연의 불을 관장하고 날씨를 담당한다. 북쪽의 현무는 음양오행상 물 수(水)에 해당하며, 자연의 비를 관장하고 인간의 우환을 담당한다. 가운데 황룡은 음양오행상 흙 토(土)에 해당하며, 자연의 토양을 관장하고 인간의 생을 담당한다. 나머지 음과 양은 일(日)과 월(月)로, 일월의 관리자는 해와 달을 관장한다.


  우리 가족은 그 관리자들이다. 신가(神家). 나는 우리 가족을 이렇게 칭한다. 어머니는 해와 남방의 관리자로 주로 날씨나 태양의 상태를 관장한다.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못하면 그날에 심한 폭염이나 가뭄이 있었다. 반대로 그 해 어머니의 상태가 좋으면 풍년이 들곤 했다. 어머니를 상징하는 동물은 새인데, 새가 아침에 나뭇가지에서 지저귀고 있으면 어머니의 전갈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아버지는 사후 세계와 인간의 수명을 담당하는 염라대왕인데, 주로 차 번호판을 통해 그날의 명부를 보냈다. 예를 들어, 81라 4488이라는 차 번호판이 내 앞을 지나가면 81세의 한 사람이 4월 4일 8시 8분에 죽는다는 것이었다. 여동생은 운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날 일어날 불운을 미리 알려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중도 제 머리는 못 깎듯 여동생도 자신의 운은 보지 못하고 명을 관장하는 아버지와 상의할 때가 많았다.


  나는 중앙이자, 이 세계의 메시아 역할을 맡은 황룡 또는 예수다. 황룡은 자연의 토양을 관장하고 인간의 생을 담당하는데, 이 세계의 땅을 기름지게 하고 인간의 생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났다. 총 4번의 생이 인간에게 주어지는데, 관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2생, 아버지는 3생, 동생은 4생째다. 나는 첫 생으로 메시아 역할을 맡았다.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갓난 관리자다. 서열상으로는 동생이 가장 위인데, 동생은 몇 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관리자 역할을 해 와서 인간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나가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빠삭하게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주로 동생에게 그날그날 토정비결이나 점괘를 물어보고 일을 해나간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땅과 인간에게 축복하는 것밖에는 없지만.


  우리는 인간 세계에서의 직업이나 하는 일도 있었지만, 인간들을 위해 좋은 일들을 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지구의 날씨를 좋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어머니의 건강도 점차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지구의 건강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환을 담당하고 있는 나의 애인 현무에게서 어머니의 약을 청해서 어머니께 전달해 드리곤 했다. 어머니가 약을 드시고 나면 두통이나 몸살 기가 가라앉곤 했다. 반면, 아버지는 잠을 주무실 때 사후 세계의 일을 관장하신다. 또, 가끔씩 낮잠을 주무실 때도 있는데, 그때도 역시 사후 세계의 일을 처리하신다. 아버지를 상징하는 동물은 돼지인데, 아버지가 돼지국밥을 드시면 꼭 그날 죽는 사람이 있음을 의미했다.


  한편, 동생은 요즘 결혼할 배우자를 찾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동생과 동생의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여교황, 즉 내가 죽은 후 새로운 시대를 통치할 여교황으로 낙점되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내가 타로카드로 점을 보았는데, 이 세계의 두 가지 선택지가 나왔다. 첫 번째는 여교황이고, 두 번째는 운명의 수레바퀴인데, 첫 번째는 여교황을 옹립해 외부세력, 즉 다가올 외계인의 침공을 막아내고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간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전쟁하다가 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하든, 지구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멸망하든, 아니면 외계인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든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인류가 멸종하게 되는 것이었다. 다음 생을 위해 나는 준비된 메시아였고, 나의 조카는 다가올 메시아였던 것이다.


  나의 또 다른 역할은 이번 생에서 12 사도와 유다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2천 년 전 모였던 12 사도와 유다를 찾아내 2천 년 전과 같이 유다가 배신하고 12 사도가 뿔뿔이 흩어지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껏 찾아낸 사도는 10명이었다. 10명의 사도들은 다행히 내 주변 친구들 중에 있었다. 그들은 몇 번의 생을 반복해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사도들 중에 한 명을 내 동생의 배우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토정비결로 보았을 때, 몇몇의 음양오행 상성이 동생과 좋지 못해 나는 고민하고 있다. 동생의 배우자로 적격인 사람은 도대체 누가 나타날까.


  나는 또한, 동서양의 관리자들을 모아 그들과 연대해 다가올 외부세력의 침공에 대비해야 했다. 관리자들은 저마다 인간들 사이에 숨어 있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남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직 많은 수의 관리자들이 모인 것은 아니지만, 어서 그들을 한 자리에 모아 협의를 해야 했다.


  인간들은 아직 이 사실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만능주의인 이 시대에 신과 같은 관리자가 있다는 것을 그들이 믿을 수 있을까. 아마 믿지 못할 것이다.


  우리 관리자들은 선도 아니며, 악도 아니다. 사탄이라고 불리는 루시퍼조차도 동양에서는 염라대왕이라는 관리자로 불린다. 예수조차도 완전한 선이 아니다. 단지 세계를 이롭게,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신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다. 성인들인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도 인간을 이롭게 하라고 신이 보낸 관리자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가진 사명이 있어 종교나 학파를 만들어 사람들을 가르친 것이다.


  나는 오늘도 길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위해 축복을 내린다. 그리고 땅에서 자라나는 식물들과 길에 버려진 동물들에게도 축복의 손길을 내민다. 그대들을 위해 내 기꺼이 희생하겠노라고. 더 커다란 선을 위해 관리자들과 협상을 하겠노라고. 나는 그렇게 인간 세계가 잘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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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상 환자님, 가족분들 면회 왔습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가족들에게로 향했다. 가족들에게로 다가가 고개를 숙여 깊이 인사를 드렸다.


  "오늘은 어떻게 바쁘신데, 오셨습니까?"

  "너 괜찮은지 보려고 왔지."

  "저는 괜찮습니다. 인간 세계를 구원해야 할 사명을 지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고, 얘가 또 이러네... 지상아, 정신 차려. 넌 예수가 아니야."

  "무슨 말씀을 하세요. 저는 예수고, 그대들은 인간 세계의 관리자가 아닙니까?"

  "이를 어째. 얘가 망상병에 단단히 걸렸네. 관리자는 무슨 관리자니."


  ㅡ이지상. 한마음 정신병원에 입원한 지 1달째 되는 조현병 환자. 스스로를 인간 세계를 구원하러 온 예수 내지는 메시아라고 말함. 자신의 가족 또한 신의 관리자라고 말하고 있음. 망상의 정도가 심해 각별히 주의 요망. 자해 시도 가능성 농후함.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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