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게 너무 많아
놀기, 츄르, 밥, 잠
우리집 고양이가 좋아하는 순서다. 관리상의 목적으로 츄르를 잘 주지 않지만, 봉지를 뜯었다 하면 고양이는 체면 차리지 않고 정신없이 먹는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좋아하는 게 있다. 바로, 움직이는 물체와 갑자기 나는 소리이다.
츄르를 먹다가도 사냥감의 방울 소리가 들리면 그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눈이 스르르 감기다가도 새로운 움직임을 포착하면 눈이 반짝 날카롭게 떠진다.
달려가겠군 하는 순간 이미 저만치 날아가있다. 엄청난 반응 속도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바로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선다. 지체하지 않는다.
다 놀았나보다 싶어 치우면 어느새 돌아와 내가 치웠던 그 장난감을 찾는다.
정확히, 그 전에 놓여있었던 그 자리를 뱅글뱅글 돌면서 찾는 소리를 낸다.
그런데 안보이면 또 다른 걸 하고 논다. 미련을 보이지 않는다.
그때그때 집중하고 신나게 논다.
이 엄청난 집중력과 뛰어난 태세전환을 보니, 내가 예전에 되고 싶었던 어떤 인간상(像)이 떠오른다.
공과 사가 뚜렷한 사람이 있다. 같은 공(公)에서도, 하나의 일이 잘 안풀려도 크게 개의치 않고 다른 일을 진행하는 사람, 문제가 생겨도 조바심 내지않고 안정적으로 할 일을 하는 사람, 사회초년생 때 이런 인간상을 롤모델로 삼았었다.
당시의 내 주변환경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사소한 실수 하나를 가지고서도 하루종일 자책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수없이 되새김질 해 온 몸의 세포들 하나하나에게 낱낱이 알리고 있었다. 절대 까먹으면 안될 엄청난 사실인 것처럼.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실수들은 큰 일이 아니었다.
문제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된다. 그런데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생각하면 정말 별거 아닌 괜찮은 일이 된다.
사회초년생때의 나는 후자의 다독임이 필요했었는데 아쉽게도 오히려 그 반대의 환경속에서 나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시간을 지냈던 것 같다.
그 단계는 지나왔지만 아직,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생기면 그 생각을 붙잡고 있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당장 해결되지 않는 그 일을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다른 일로 잘 넘어가야할 때인 것 같다. 계속해서 연습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