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워지기, 수용
오늘도 어김없이 녀석이 내 운동을 방해했다. 내 머리를 톡톡 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내 머리카락을 이 정도로 좋아하는데, 나도 이제 적응이 좀 된 거 같은데 참아볼까 싶었다.
그때였다. 작은 솜방망이 두개가 내 얼굴을 스쳤다. 역시 안되겠군.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녀석이 한발 빨랐다. 나보다 먼저 방에 쏘옥 들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고양이가 들어있는 방문을 닫았다. 10분쯤 지났을까, 이제 방문을 열어주려고 동태를 살폈다.
그때였다. 문틈 사이로 무언가 보였다.
하얀 털이 송송한 고양이 발이었다.
방에서 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방문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 폭신한 두발이 가지런히 모여있는걸 보니 마음이 따가웠다. 미어졌다. 얘 여기에 가만히 앉아서, 울지도 않고 계속 날 기다린거야?
고양이가 문을 닫은 나를 미워하고 있진 않을까, 실망한 눈을 하고 있진 않을까?
문을 열어주기전 두려움이 잠시 스쳤다.
문이 열렸다. 녀석은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내 앉은 주위를 뺑뺑 돌며 그르릉 그르릉 소리를 들려준다. 내게 얼굴을 계속해서 비벼댔다. 넌 미움이란 게 없구나. 그냥 그 순간만 있구나.
그래, 그 상황만 있구나.
고양이는 문이 닫힌 그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수도 있다. 나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미움이란 감정은 내게 해악을 끼친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에게도 생긴다. 해악이라는 것도 내가 이름붙인 사실이지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반대의 속성일지도 모른다. 아무 의도가 없었을수도 있다.
기대라는 것도 상대방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다.
해악도, 기대도 모두 내가 만들어내는 내러티브다. 물론 즉각적으로는 내 편도체가 활성화되면서 긴장사태에 놓이겠지만 잠시 미움의 대상에 꽂혀있는 나에게서 떨어져 상황을 바라보자.
이게 어떤 상황인가, 내가 느끼는 불안함은 무엇 때문인가,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나의 하루가 분노와 불안으로 들끓는다. 내 시간을 그렇게 내버려둘 수 없어 생각을 많이하는 요즘이다. 오늘도 고양이에게 하나 배운 것 같다. 고맙다 고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