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30분, 자연은 참 신기합니다. 어제까지 깜깜하던 아침이 이제는 또렷하게 밝아오고 공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납니다. 그럼에도 새벽 5시라는 숫자는 여전히 각성의 잔재가 남은 시간이라 조깅을 하는 육체적 에너지는 늘 부족합니다. 파이팅의 기운을 위해 댄스음악을 들으며 몸에 힘껏 에너지를 불어넣어 줍니다.
신기한건 운동을 마칠 어디쯤이면 배터리가 충전되듯이 힘없다는 느낌이 사라지고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마침 익숙한 음악이 나오는지라 혼자 흥얼거리며 힘차게 집안으로 들어오니 출근을 준비하던 남편이 말합니다.
“헐~ 아침부터 그렇게 시끄러운 노래를 듣고 다니는 거야?”
“어머, 당신 몰라?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면 힘든 것도 잊어지고 운동효과도 올라간대. 새벽에 대공원 가서 조깅하려면 얼마나 힘든 대. 죽을 거 같아. 그래서 나의 자극제야”
남편이 뭔가 중얼거립니다. “뭐라고? 뭐라고 했어?”
“아니 힘들면 안하면 될 거 아니냐고, 그 힘든 걸 누가 하라고 했어? 왜 하는데? ㅋ”
순간 ‘얼음’하는 느낌입니다. “아니, 몸에도 좋고 내 정신에도 좋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준비하는데 남편의 말이 떠나질 않는 겁니다. 진짜 아무도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죽기 살기로 새벽이면 운동을 갑니다. 저는 태생적으로 저혈압이라 눈뜬 새벽에는 일반인들보다 더 힘이 없어 아침 식사를 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에너지가 올라오는 체질입니다. 평일에는 출근과 아들의 아침식사 준비로 그렇게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보니 겨우 숨만 쉬면서 집을 나서는 겁니다.
‘왜일까? 난 뭘 위해서 이렇게 악착까지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의 실마리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제 삶의 다양한 영역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나는 왜 다이어트를 그리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일까?
독서는 왜 하나? 왜 부자가 되고 싶은 거지? 애들에게 무얼 위해 그리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더불어 남편은, 직장은, 인간관계, 각종 자격증 취득까지 그야말로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됩니다.
지금이야 해피영희라는 닉네임처럼 늘 웃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약 10년 전만 해도 하루하루가 참 지옥이었습니다. 직장에는 저승사자 같은 상사들이 득실거리고 세상에는 나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뿐이고 양육과 집안일은 나를 숨 막히게 하는 큰 바위덩어리였습니다. 주말이면 피곤으로 늦은 기상을 하고 점심 먹고 나면 오후가 되어버렸습니다.
일요일 밤 12시 귀신보다 무서운 건 뭐? 월요일~ 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병원 원무과에서 근무하던 막내동서가 워킹 맘이 너무 힘들어 사직을 했다는 겁니다. 시동생은 정말 이름도 없는 작은 회사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형편이라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습니다.
“ 와~ 동서야 좋겠다. 그런데 너 진짜 과감하다. 회사를 그만 두는구나~”
“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들 키우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적게 벌어 적게 쓰죠. 뭐. 어머니도 그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을 듣는데 왠지 억울한 겁니다. 저에게는 아무도 그만두라고 해 준 사람이 없었거든요. 오히려 육아휴직하려고 하는 저를 뜯어말리며 둘째 아들을 시골로 데리고 간 시어머니에, 절대 그만두면 안 된다고 격려 아닌 격려하던 시누이들... 심지어 친정가족들 조차 누구도 저에게 쉬거나 그만두라고 이야기 해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 악물고 다니다 한계에 부딪히면 1년에 한번은 졸도를 합니다. 그럼 또 2주 전후로 입원치료를 하고 회복을 하고 또 출근하고...
그런데 시어머니도 애 키우는 게 더 크다며 동서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셨다 하니 괜히 심술이 올라옵니다. 게다가 아무리 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과감하게 사직서를 내는 동서의 용기도 너무 부러운 겁니다. 저는 동서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가져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으니까요. 그렇게 울면서 살아가던 어느 날 진짜 큰 파도를 만나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쓸고 간 다음 어쩔 수 없이 저는 새로운 새싹을 피우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세월이 가고 그 시간 속에 전에 없이 더 열심히 삶을 살고 있는 제가 있습니다. 올해 초 사무관 승진을 하고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을 받았을 때 딸이 저에게 그랬습니다.
“엄마 우리 어릴 때 힘들지 않았어?”
“어휴, 얼마나 힘 들었는데, 엄마 매일 울면서 회사 다녔잖아”
“정말 다행이다. 엄마가 잘 견뎌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때문에 엄마가 그 어려운 시간을 포기했더라면 그래서 지금 엄마가 이룬 것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난 너무 너무 미안했을 거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삶에 타인을 원망하던 그 시간이 이제 와서 보니 결국은 제 자신의 뭔가를 이루는 삶의 결과입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성과물의 가장 큰 수혜자는 결국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자신인겁니다.
그 시간을 견디었으니 저 기특한 딸도 만나고 삶의 탄탄한 울타리도 지은 겁니다. 이제 보니 동서를 부러워하고 가족들을 서운해 하던 시간도 그렇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제가 그만두거나 쉬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이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당신이 내가 그만두라고 그만 둘 사람이야? 당신 욕심에 그렇게 열심히 다니는 거잖아.”
참 서운하고 얄미운 말이었는데 지금 보니 부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너무도 간절하게 직장이 갖고 싶어 아이를 놓고 미친 듯이 공부했었고 동기들 보다 뒤지지 않으려고 늘 달려갔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목에 힘든 시간을 만나니 누군가를 원망하고 내 삶에 대한 애정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툭 던져준 한마디에 한 20년 세월 시간여행을 마치고 집을 나설 시간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에 맴돌던 노란 꽃무늬 치마를 입었습니다. 고급스러운 천에 화려한 꽃무늬가 사람을 제법 화사하게 만드는 고운 옷입니다. 역시나 직원들이 한마디씩 인사를 합니다.
“어머, 실장님, 오늘 옷이 너무 예뻐요. 퇴근하시고 무슨 약속 있으세요?”
“제가요, 출근할 때 빼곤 좋은 옷을 입을 일이 없어요. ㅋ 얼마나 감사한일이에요. 이렇게 좋은 곳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매달 제게 돈을 주는~ 즐거운 파티장 오는 기분이에요. 파티 장에 갈 때는 곱고 화려하게 가는 거 아니에요? ㅎㅎ ”
생각하지 못한 직원의 한마디가 제게 옵니다.
“진짜 실장님 너무 감사해요. 항상 신경 쓰시는 모습이 저희를 대접하는 거 같아 너무 좋아요.”
역시 내가 보내면 또 돌아오는 세상입니다. 세부적인 내용들이 바뀌긴 했지만 똑같은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는 너무 다릅니다. 차이는 제 자신의 마음과 선택입니다. 결국 세상은 제가 선택한 색안경으로 돌아가는 마법의 시간 같습니다. 내일도 저는 새벽 5시 기상을 하고 반쯤 졸리는 눈으로 또 새벽 조깅을 갈 겁니다. 새벽에 흥얼거린 거북이의 ‘빙고’라는 노래가 가슴속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