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빼빼로데이.
1994년 부산의 한 여고에서 친구들끼리
“빼빼로처럼 날씬해지자”며
서로 빼빼로를 주고받은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챙길 수 있는 날이지만,
빼빼로데이는 그저 가볍게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인지
학생들 사이에서 더 큰 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밤 11시.
학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이 부엌으로 달려갔다.
생전 라면 한 번 안 끓여본 딸아이가
빼빼로를 직접 만들겠다며 분주했고,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은
누나의 지시에 맞춰 재료를 꺼내고, 초콜릿을 녹였다.
고등학생이 된 뒤로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낯설 만큼 어색했다.
그런데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엄마 건 없냐?”
곁에서 장난처럼 묻고,
대답 없는 아이들에게 소심하게 삐치기도 했다.
그때 딸아이가 수줍게 다가와
빼빼로 두 개를 내밀었다.
“엄마, 두 개 중에 하나 골라. 나머지는 아빠 거야.”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고2가 되던 해,
불안해하던 아이는 자퇴를 선언했다.
뜻대로 되지 않자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처럼
문을 잠그고 방 안으로 숨어버렸다.
하루 종일 같은 집에 있어도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날이 많아지고,
나는 그저 문 밖에서
아이가 스스로 터널을 빠져나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0월.
아이는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눈빛이었다.
지금은 새로운 희망을 붙잡고
다시 무언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가 오늘,
내게 빼빼로를 건넸다.
너와 나,
긴 방황의 터널을
정말로 지나온 걸까.
그래, 엄마는
오늘만큼은 그렇게 믿고 싶다.
나는 되는 인간이다♡
돈 워리, 비 해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