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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Jul 26. 2020

26. 신화가 전해지는 그곳에는

바투미, 카즈베기 산, 아라라트 산



불가능이란 없는 것 같고 우리의 윤리관을 훌쩍 뛰어넘는 신들의 사생활이 가득 담긴 신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읽는 이에 따라, 해석하기에 따라 신화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니 이것 또한 신화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화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그리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신화를 읽다 보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시실리 섬에서 흑해 연안의 나라까지 광범위한 지역이 신화의 배경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시실리의 활화산 에트나


지금도 심심(?)하면 불길을 내뿜는 시실리 섬의 활화산 에트나(Etna)가 대장장이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라고 알려져 있듯이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만나는 신화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이번 이야기는 신화 속 많은 이야기의 배경이 된 흑해 연안 나라들의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아손과 황금 양털,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아니지만 구약 창세기의 주인공 노아의 방주까지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있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로 떠나보자.

 


신화 속 최고의 악녀 메데이아(Medeia)의 고향, 바투미


그리스 신화에서 아르고 원정대 이야기는 당대의 영웅들이 총출동한 인기 있는 주제다. 주인공 이아손과 그를 사랑한 메데이아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한 설정으로 많은 예술 작품의 단골 주제가 되어 왔다.

 

숙부 펠리아스에게 이올코스의 왕위를 빼앗겼던 이아손은 숙부로부터 왕위를 되찾기 위해 그의 명을 따라야만 했다. 이아손은 펠리아스가 가져오라는 '황금 양털'을 찾으러 아무도 가본 적 없고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흑해 너머 아득히 먼 동쪽에 있다는 나라 콜키스(고대 조지아) 땅으로 떠나게 된다.

신화에 기록된 이 아득히 먼 땅이 코카서스에 있는 나라 조지아의 항구 바투미(Batumi)라고 한다.


그리스의 이올콜스 땅에서 에게해를 거쳐 흑해를 건너 바투미까지는 2000여 km의 거리다. 지금이야 별거 아닌 거리 같지만 먼 옛날에는 목숨을 걸고 다녀와야 하는 곳이었다.


신화에는 이렇듯 불가능할 것 같은 과업이 영웅들에게 주어지고 또 영웅들은 이 일을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해결해 낸다. 신화의 주인공들이니 성공은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는 독자인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바투미 중심가의 메데이아 동상


바투미의 중심가에는 이아손에게 도움을 준 콜키스의 왕녀 메데이아의 높다란 동상이 오른손에 황금 양털을 들고 서 있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탈출을 돕기 위해 친동생을 살해하는 이해하기 힘든 일까지 벌이면서 조국을 탈출하지만 그 후 변심한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번에는 이아손과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희대의 악녀로 남아 있다.


마법에도 능통했던 것으로 알려진 메데이아는 예술 작품 속에 마법사의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녀가 주인공인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루브르에서 본 들라크루와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들라크루와는 사랑에 배신당한 여인의 분노가 자신의 사랑하는 두 아이를 죽음으로 몰수 밖에 없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을 포착했는데 또한 참으로 애처로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두 자녀를 죽이려는 메데이아, 1862, 들라크루와, 루브르


그러나 바투미에 세워진 메데이아 동상의 모습은 수줍어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보여 신화 속에 그려진 비정한 그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아손의 숙부 펠레아스가 왜 이아손에게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먼 나라 콜키스까지 가서 황금 양털을 가져오라고 했느냐 하면 황금 양털은 이아손과 먼 친척이 되는 아타마스 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아손의 먼 친척인 보이오티아의 아타마스 왕에게는 프릭소스 왕자와  헬레 공주가 있었다. 새어머니인 왕비가 두 남매를 미워하여 목숨까지 위협하자 헤르메스가 날개 달린 황금 양을 보내 그들을 탈출시키게 된다.

믿거나 말거나 이 양은 날 수도 있고 말도 할 수 있는 '키소말로스'라는 양이다.


두 남매를 태우고 머나먼 콜키스 땅으로 날아가던 중  터키 인근의 다르다넬스 해협 부근에서 동생 헬레 공주는 바다에 빠져 죽게 되는데 이 지역 바다 이름이 '헬레스폰토스(헬레의 바다)'인 것도 이런 신화의 배경 때문이다. 트로이 근처에 있는 이 해협은 에게 해와 마르마라 해를 이어주는 좁은 해협으로 마르마라 해의 동쪽 끝에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함께 터키를 아시아와 유럽으로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하는 해협이다.


동생이 바다에 빠진 줄도 모른 채 프릭소스 왕자는 몹시 거친 바다로 소문난 지금의 흑해를 정신없이 건너 현재 조지아 땅인 콜키스에 도착한다.


프릭소스는 콜키스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신에 감사하는 뜻으로 '키소말로스'를 제물로 바치고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에게는 '키소말로스'의 황금 가죽을 선물했다. 왕은 황금 양가죽을 신성한 나무에 걸어두고 잠을 자지 않는 거대한 용이 지키게 하면서 왕국의 최고의 보물로 간직하고 있었다. 신화나 전설에는 이런 용들이 자주 등장한다.


먼 친척이긴 하나 우리 집안 것이니 돌려받겠다고 이아손이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등 당대를 호령하던 50여 명의 장수들을 데리고 머나먼 항해를 해 온 것이다. 이 장수들을 '아르고노트(Argonaut)'라 부르는데 '아르고 배의 선원'이란 뜻으로 그들이 타고 간 배의 이름 '아르고'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무리 먼 친척이라도 나라의 보물을 선뜩 내어줄 수는 없는 법.

콜키스의 왕은 줄 듯 말 듯 이아손에게 조건부 난제를 준다. 이아손이 모든 난제를 뚫고 황금 양털을 무사히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의 헌신적인 도움 덕이었다. 이런 메데이아를 이아손이 배신을 했으니.

 

바투미 시내의 메데이아 동상 아랫부분에는 아르고노트의 활약상과 거대한 용이 지키고 있는 황금 양털을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이아손이 빼앗는 장면들이 부조로 장식되어 신화를 따라 먼 곳까지 찾아온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황금 양털을 빼앗는 이아손과 메데이아(메데이아 동상 아래 부분의 부조다. 신화에는 거대한 용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부조에는 큰 뱀 같이 보인다)

 

프로메테우스의 고난, 카즈베기 산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신들의 전유물이었던 불을 훔쳐다준 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그는 코카서스의 깊은 산속의 절벽에 묶여 밤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먹히는 고문 같은 고통을 받게 되고.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은 3000년 동안 지속되었다는데 그가 묶여 있던 코카서스 산 이 바로 조지아에 있는 해발 5047m의 카즈베기(Kazbegi) 산이다. 코카서스 산맥에는 유럽 최고봉인 엘부르스 산(5642m)을 포함하여 해발 5000m가 넘는 산들이 많은 험난한 산악 지역이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화의 배경으로 안성맞춤인 산이다.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1636, 루벤스, 프라도 미술관(좌),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 1611, 루벤스, 필라델피아 미술관(우)


그는 회향(fennel) 가지를 이용해 제우스의 벼락 불씨를 훔쳤다고 한다. 회향은 펜넬이라고 하는 남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향신료로 주로 사용된다.

대로한 제우스가 제우스의 상징인 벼락으로 그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고통스러운 벌을 내린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도 무척 흥미로운 예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걸 듣고 싶어서 죽이지 않고 고통만 주었다는 이야기다.


츠민다 교회(해발 2200m) 뒤로 모습을 드러낸 웅장한 카즈베기 산


예언의 내용은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제거했듯이 그도 아들에 의해 제거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여러 여신들과 여인(https://brunch.co.kr/@cielbleu/143 참조)들을 거느린 그였기에 그게 누구의 아들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통받던 프로메테우스를 독수리의 공격에서 구해낸 것이 바로 헤라클레스다.

헤라클레스도 헤라 여신이 내린 12 과업을 수행하느라 힘든 시기였는데 마침 그가 해야 할 과업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헤스페리데스(정원의 님프들)가 지키는 황금 사과나무의 사과를 따오는 것이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헤라에게 선물한 이 사과나무에는 불멸의 황금 사과가 열리는데 머리가 백개 달린 잠들지 않는 용이 지키고 있으며 어디 있는지 조차도 확인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헤스페리데스가 아틀라스의 딸이란 것을 알고 있던 제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헤스페리데스와 아틀라스의 관계를 알려주고 대신 헤라클레스가 프로메테우스를 괴롭히는 독수리를 죽이고 그가 알고 있는 예언의 내용을 알아오도록 했다.

예언의 내용은 제우스 자신을 제거할 아들을 낳을 상대가 바로 바다의 요정 테티스(Thetis)라는 것이었다.


제우스와 테티스 여신, 1811, 그라네(Granet), 그라네 미술관(엑상 프로방스)


그렇잖아도 테티스의 미모를 흠모하고 있던 제우스는 예언의 내용을 알고 난 후 테티스를 인간 영웅 펠레우스와 결혼시켜 불씨를 없애려 했다.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은 트로이 전쟁의 화근이 된 '파리스의 심판(Judgement of Paris)'으로도 유명한 결혼식이다.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고 쓰인 사과 하나를 던져 놓았는데 막강한 세 여신(헤라, 비너스, 아테네)들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어느 누구도 감히 사과를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어리숙한 양치기 파리스(그는 사실은 트로이의 왕자다)로 하여금 사과를 주게 하자고 했다.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는 비너스의 제안에 그만 사과를 비너스에게 주고 말았다. 비너스의 약속대로 그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얻게 되지만 결국 그로 인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파리스의 심판, 1632, 루벤스, 내셔널 갤러리(런던): 아테네, 비너스, 헤라, 헤르메스, 파리스(좌로부터)


이 결혼으로 테티스 여신은 인간과 혼인한 유일한 신이 되었는데 테티스 여신의 아들이 누구냐 하면 바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다.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라 영생을 못 갖은 아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저승의 스틱스 강에 아기를 넣었다가 뺐는데 그만 잡고 있던 발목엔 강물이 묻질 않았다. 트로이 전쟁에서 하필 그곳에 화살을 맞아 아킬레스는 영생을 못하고 죽었지만 그 아킬레스 건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시작한 신화는 돌고 돌아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의 죽음으로 일단락을 맺지만 신화는 이래서 늘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해발 5047m의 카즈베기 산은 안개에 싸여 있는 날이 많아 모습을 쉽게 보여 주지 않는다. 신비주의 코스프레를 하는 날이 많아 카즈베기 산을 만나는 것은 여행자의 운이다.


조지아를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주로 카즈베기산을 조망할 수 있는 해발 2200m의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Gergeti Tsminda Sameba)교회를 방문하는데 15세기에 지어진 이 교회는 조지아가 전쟁 시 정교회 성모상을 피신시키는 매우 중요한 교회로 난공불락의 위치에 세워져 있다. 샤니 산과 어우러진 츠민다 사메바 교회의 모습이 또한 장관이라 조지아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많이 나온다.  프로메테우스의 카즈베기 산은 샤니 산의 반대쪽에서 가끔씩 모습을 나타내곤 한다.



츠민다 교회 뒤로 병풍처럼 서 있는 샤니 산



노아의 방주(Noah's Ark)가 멈춘 성산, 아라라트(Ararat) 산



멀리 구름 위로 보이는 소 아라라트(좌)와 대 아라라트 (우) 산 봉우리


아라라트 산은 터키와 코카서스(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지역) 지방의 신흥 독립국가인 아르메니아의 국경을 지키는(?) 높은 산줄기에 있는 산이다.

해발 3896m의 소 아라라트 산과 해발 5137m의 대 아라라트 산의 두 거봉이 있는 성산으로 백두산이 2744m인 것을 감안한다면 얼마나 높은 산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더구나 이곳은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멈춘 곳으로 알려져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산이다.


아르메니아는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국가이지만 그들의 역사는 기원전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러시아 혁명 이후 아라라트 산은 그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러시아와 터키의 협상으로 터키의 영토가 되는 바람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성산은 국경 넘어 먼발치에서 바라다볼 수밖에 없는 땅이 되었다.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아르메니아가 이슬람 권인 터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들의 순탄치 않았던 역사가 절로 느껴진다.

이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산. 그러니 더더욱 가보고 싶은 산이 되어 버렸다.


시실리 몬레알레 대 성당을  장식하고 있는 노아의 방주 금박 모자이크


여호와가 인간들에게 실망을 느껴 대 홍수를 가져오고 이때 신앙심이 두터웠던 노아는 여호와로부터 대 홍수가 있을 것이라는 예시를 받고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다.

그가 600살이 되던 어느 해 2월 17일부터 시작된 비는 40여 일을 주야로 쏟아지고 물 위를 떠다니던 방주는 5개월 뒤인 7월 17일 아라라트 산에 멈추었다는 성경 말씀이다.

노아와 동물들은 1년 10일 만에 방주에서 내려올 수 있었고 그 후 노아는 350년을 더 살고 950세에 죽었다고 한다. 천 년을 살았다니.


아라라트 산기슭에 노아의 방주가 있다는 여러 설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무로 만든 배가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남아 있을 수 있냐는 구체적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지만 그 진위를 가리기보다는 이야기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수많은 논란과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노아의 방주가 신학과 신앙에서 중요한 영향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믿음 이란 것은 불가능도 가능하게 하지 않던가?

우리는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지(https://brunch.co.kr/@cielbleu/59 참조)의 기적을 믿으며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많은 병든 신자들도 보았고 세계 최고의 도시라는 파리 한 복판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예수님의 진짜 면류관(https://brunch.co.kr/@cielbleu/26 참조)에 입을 맞추며 기도드리는 많은 신자들도 보았다.

'진짜일까?'를 마음에 품고 있다면 믿기 어려운 상황들이다.


성모 발현지 루르드의 아침 미사


노트르담 사원의 '예수님의 면류관'과 함께 진행되는 미사


아라라트 산은 '코르비랍(Khor Virab)'이라는 수도원에서 조망하는 풍경이 장관이다.

아라라트 산을 배경으로 한 코르비랍 수도원의 풍광은 엽서의 한 장면 같아 아르메니아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아라라트 산과 코르비랍 수도원


코르비랍 수도원은 '지하 감옥' 이란 뜻이라는데 이곳에는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처음으로 포교한 성 그레고리가 13년 동안 갇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그가 갇혀 있던 지하 감옥은 수직으로 설치된 비좁은 계단을 이용해 한 명씩 내려가 볼 수 있다.

 

성 그레고리(257-331)는 아르메니아의 귀족이었는데 아버지가 전왕을 살해하는데 가담하여 사형에 처해지자 터키의 카파도키아로 도피하여 수도사가 되어서 다시 조국으로 돌아온 성인이다. 당시 기독교를 박해하고 있던 티리다테스 3 세왕의 배교 강요를 받아들이지 않자 코르비랍의 지하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왕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던 중 어느 날 왕비의 꿈에 성 그레고리가 나타났다.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그를 찾아보니 죽지 않고 있더란다. 그래서 이 성인은 왕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게 되고 감동한 왕은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 그 땅에 기독교를 최초로 포교한 성 그레고리가 갇혀 있었다는 코르비랍 수도원 앞에 서서  지금은 이슬람 권의 땅이 되어버린  그들의 성산 아라라트 산을 멀리서 바라봐야만 하는 아르메니아.

구약 창세기의 이야기가 현실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신기하고 반갑기도 하지만 아르메니아 인들의 우여곡절 많은 역사를 듣고 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라라트 산에서 60여 km  떨어진 수도 예레반(Yerevan)에서도 보이는 이 성산을 나라를 대표하는 국장(Emblem)의 정 중앙에 노아의 방주와 함께 그려 넣을 정도니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정신적 지주가 되는 곳인지 상상이 된다.


아르메니아 국장(Emblem) 일부, 중앙에 아라라트 산과 노아의 방주가 그려져 있다

산 허리에 머무는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아라라트 산의 정상은 안타까운 아르메니아 인들의 마음을 위로라도 해 주듯 지긋이 아르메니아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예레반 시내 뒤로 보이는 구름 속의 아라라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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