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6. 신화가 전해지는 그곳에는(I)

조지아 바투미

by Ciel Bleu

불가능이란 없는 것 같고 우리의 윤리관을 훌쩍 뛰어넘는 신들의 사생활이 가득 담긴 신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읽는 이에 따라, 해석하기에 따라 신화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니 이것 또한 신화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화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그리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신화를 읽다 보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시실리 섬에서 흑해 연안의 나라까지 광범위한 지역이 신화의 배경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시실리의 활화산 에트나

지금도 심심(?)하면 불길을 내뿜는 시실리 섬의 활화산 에트나(Etna)가 대장장이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라고 알려져 있듯이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만나는 신화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이번 이야기는 신화 속 많은 이야기의 배경이 된 흑해 연안 나라들의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흥미진진한 '이아손(Jason)과 황금 양털(Golden Fleece)'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 이아손과 당대의 영웅들이 총출동하여 멀고도 험한 항해 끝에 황금으로 된 양털을 구해 온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유명한 '아르고너트(Argonauts) 원정대'다.


신화 속 최고의 악녀 메데이아(Medeia)의 고향, 바투미


이 이야기의 결말은 주인공 이아손과 그를 사랑한 메데이아(Medeia)의 드라마틱한 결말로 많은 예술 작품의 단골 주제가 되어 왔다.

큰아버지에게 왕위를 빼앗겼던 이아손은 왕위를 되찾기 위해 큰아버지의 명령대로 '황금 양털'을 찾으러 아무도 가본 적 없고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흑해 너머 아득히 먼 동쪽에 있다는 나라 콜키스(고대 조지아) 땅으로 떠나게 된다.

아르고 원정대, 1490, Lorenzo Costa, Musei Civici di Padova

신화에 기록된 이 아득히 먼 땅이 현재 코카서스에 있는 조지아의 항구도시 바투미(Batumi)다.


그리스에서 에게해를 거쳐 흑해를 건너 바투미까지는 2000여 km의 거리다.

지금이야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먼 옛날에는 목숨을 걸고 다녀와야 하는 곳이었다.


신화에는 이렇듯 불가능할 것 같은 과업이 영웅들에게 주어지고 또 영웅들은 이 일을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해결해 낸다.

신화의 주인공들이니 성공은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는 독자인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바투미 중심가의 황금 양털을 들고 있는 메데이아 동상

바투미의 중심가에는 이아손에게 도움을 준 콜키스의 왕녀 메데이아의 높다란 동상이 오른손에 황금 양털을 들고 서 있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탈출을 돕기 위해 친동생을 살해하는 이해하기 힘든 일까지 벌이면서 사랑하는 이아손과 조국을 탈출하지만 그 후 변심한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번에는 이아손과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이게 되는 희대의 악녀로 남았다.


마법에도 능통했던 것으로 알려진 메데이아는 예술 작품 속에 마법사의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녀가 주인공인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루브르에서 본 들라크루와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들라크루와는 사랑에 배신당한 여인의 분노가 자신의 사랑하는 두 아이를 죽음으로 몰수 밖에 없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을 포착했는데 또한 참으로 애처로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두 자녀를 죽이려는 메데이아, 1862, 들라크루와, 루브르


그러나 바투미에 세워진 메데이아 동상의 모습은 수줍어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보여 신화 속에 그려진 비정한 그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아손의 큰아버지 펠레아스가 왜 이아손에게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먼 나라 콜키스까지 가서 황금 양털을 가져오라고 했느냐 하면 황금 양털은 이아손과 먼 친척이 되는 아타마스 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아손의 먼 친척인 아타마스 왕에게는 프릭소스 왕자와 헬레 공주가 있었다.

새어머니인 왕비가 두 남매를 미워하여 목숨까지 위협하자 헤르메스가 날개 달린 '황금 양'을 보내 그들을 탈출시키게 된다.

믿거나 말거나 이 양은 날 수도 있고 말도 할 수 있는 '키소말로스'라는 양이다.

500px-Phrixos_und_Helle.jpg 폼페이에서 발견된 프릭소스와 헬레 공주 프레스코화, 나폴리 고고학 뮤지엄 소장

두 남매를 태우고 머나먼 콜키스 땅으로 날아가던 중 터키 인근의 다르다넬스 해협 부근에서 동생 헬레 공주는 바다에 빠져 죽는다.

이 지역 바다 이름이 '헬레스폰토스(헬레의 바다)'인 것도 이런 신화의 배경 때문이다.


현 터키의 트로이 근처에 있는 이 해협은 에게 해와 마르마라 해를 이어주는 좁은 해협으로 보스포루스 해협과 함께 터키를 아시아와 유럽으로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하는 해협이다.


동생이 바다에 빠진 줄도 모른 채 프릭소스 왕자는 몹시 거친 바다로 소문난 지금의 흑해를 정신없이 건너 현재 조지아 땅인 콜키스에 도착한다.


프릭소스는 콜키스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신에 감사하는 뜻으로 타고 온 양 '키소말로스'를 제물로 바치고 콜키스의 왕에게는 양의 황금 가죽을 선물했다.

왕은 황금 양가죽을 신성한 나무에 걸어두고 잠을 자지 않는 거대한 용이 지키게 하면서 왕국의 최고의 보물로 간직하고 있었다.

신화나 전설에는 이렇게 잠을 안 자거나, 눈이 1,000개 이상 달린 괴물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먼 친척의 소유이긴 했으나 우리 집안 것이니 돌려받겠다고 이아손이 '아르고노트(Argonaut)'로 불리는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등 당대를 호령하던 50여 명의 장수들을 데리고 머나먼 항해를 해 온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먼 친척이라도 나라의 보물을 선뜩 내어줄 수는 없는 법.

콜키스의 왕은 줄 듯 말 듯 이아손에게 조건부 난제를 주지만 이아손이 모든 난제를 뚫고 황금 양털을 무사히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의 헌신적인 도움 덕이었다.

이런 메데이아를 이아손이 배신을 했으니.(메데이아가 잠든 사이 그녀를 내버린 채 떠나버렸다.)

바투미 시내의 메데이아 동상 아랫부분에는 '아르고노트의 활약상과 거대한 용이 지키고 있는 황금 양털을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이아손이 빼앗는 장면들이 부조로 장식되어 신화를 따라 먼 곳까지 찾아온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있었다.

황금 양털을 빼앗는 이아손과 메데이아(메데이아 동상 아래 부분의 부조다. 신화에는 거대한 용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부조에는 큰 뱀 같이 보인다)


오늘 우리가 조지아 여행에서 어렵지 않게 들리게 되는 바투미.

이곳엔 그 옛날 이런 비극의 신화가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전해지는 해발 5047m의 카즈베기(Kazbegi) 산이다.

츠민다 교회(해발 2200m) 뒤로 모습을 드러낸 웅장한 카즈베기 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5. 세계 골프인들의 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