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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쇼콜라 Feb 25. 2024

05.저 아무때나 갈 수 있어요!!!

05. 제가 제일 잘하는 건요,

진료실을 나오니 간호사님이 수술에 대해 상담을 해주셨다. 동의 여부를 묻고, 제일 빠른 수술 날짜를 잡아주신다고 했다. 제일 빠른 날짜는 22년 5월 8일. 아니 지금이 21년 9월 중순인데 무려 7개월 뒤라니요. 방금 교수님이 당장 수술해야 된다고 하셨는데요!!!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척추측만증 수술을 하시는 교수님이라 아무래도 많은 대기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시가 급했다. 간호사님도 우리 아이는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함을 잘 알고 계셨다. 하지만 간혹 취소되는 자리가 있다고는 했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교수님이 지금 지붕에 불났다고 했어요 곧 있으면 다 탄대요 제발 부탁드려요 어떻게 안될까요?


읍소를 하며 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저는 왜 애가 이지경이 되도록 몰랐을까요. 미리 알았더라면 빨리 대기할 수도 있었을텐데. 우리 아이 어떡하나요...두서없이 쏟아냈다. 간호사님은 정말 차분하고 친절하신 분이었는데 자리 나기도 하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자책하시지도 말구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하며 나를 달래주셨다. 그 와중에 그말이 좀..안심이 됐다. 그냥..그때는 그런 말 한마디가 너무 간절했다. 괜찮을거라는 그 한마디가... 친절한  간호사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날짜는 제가 나오는대로 바로 킵해둘게요. 그리고 수술 스케쥴을 확정하려면 MRI검사를 꼭 해야해요. 그런데 MRI도 예약이 꽉차 있어서 11월 말에나 받을 수 있어요. 먼저 이걸 예약하고 그 후에 수술 날짜 나오는대로 바로 보기로 해요. 하지만 MRI도 빈자리가 나올 수 있으니 시간 되시면 확인도 꼭 해보세요. "


MRI 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것 같다. 일단 이걸 먼저 해야겠구나. 아, 이제 나는 내가 해야할 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그 첫번째는 MRI를 최대한 빠르게 받는 것. 수년간 축적된 티켓팅(!) 경험으로 나는, 이게 마치 취소된 표를 건지는 일처럼 느껴졌다.(이른바 취켓팅) 이미 사라져버린 포도알(예매 가능한 자리를 이르는 말)이선좌(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를 보고 절망할 만은 없지 않은가. 우리에겐 새벽에 찔끔찔끔 나오는 취소표가 있다.


그래서 밤엔 울고 낮엔 전화를 했다.


저기 MRI 빈자리가 혹시 있을까요? 저 가까이 살아요 아무때나 바로 병원 올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자리만 나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서는 귀찮을 법도 한데 항상 친절하게 응대해주셨다. (아산병원 정말 친절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MRI 찍으러 오실수 있냐는. 네네네네 갈게요 당장 갈게요!!!!!


드디어, 취소표를 잡았다.


(후에 남편이 이때의 내가 정말 대단해보였다고 했다. 남편은 스케쥴이 그렇게 빡빡한데 되겠냐는, 약간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전화하는 것도 내켜하지 않아 별 개의치 않는 내가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어떤 공연이라도 반드시 취소표는 나온다는 사실을, 조금 고생할 뿐이지 구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지금도 이건 제일 잘 한 일이라 생각한다.)



암울했던 첫 진료와는 달리, 그래도 조금 가벼운 맘으로 달려갔던 MRI  찍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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