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 와중에 아산병원이 가까워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교수님이라 예약 잡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3주 후쯤 바로 진료 예약을 잡을 수가 있었다. 아마 코로나가 심각했던 때라 취소도 있었던 모양이다. 느리게, 그리고괴롭게 흘러가던 시간들...혼자 울다가 또 어떤 날은 남편이랑 같이 울다가...이때가 아마 제일 암담했던시기였다. 막막하고 두렵고...우린 진짜 셋뿐이었는데 이때를 생각하면 아물지 않은 상처를 마구 헤집는 기분이다. 고슴도치처럼 서로 닿기만 해도 아프던 우리 셋...
진료날이 왔다. 처음 가본 아산병원은 너무.....너무 무서웠다. 사람도 많고 들어가는 절차도 복잡하고, 코로나 시기라서 보호자는 한명밖에 못들어가는 것도 정말이지 싫었다. 진료실에 남편도 없이 아이와 둘이 들어가야 한다니. 진료는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진이 다 빠졌다. 마음도 지쳤는데 몸은 더 힘들었다. 게다가 진료실 앞에는 어린 아이들이 엄청 많았다. 진료실 세개를 모두 이용하며 정신없이 진료가 이루어지고 울며 나가는 보호자와 침울한 표정의 아이들...
차례가 되어 떨리는 맘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교수님은 인사도 받는둥 마는둥 하시고 엑스레이만 보시더니,
지금 초가집 지붕에 불났어요 불나서 활활 타고 있는데 뭘 꾸물거려요? 아직 성장판도 안닫혔고...순식간에 더 휘어요 수술해요 일정 잡아서.
예상은 했지만...수술이라니, 아직도 받아들이기가 괴롭다. 진료실을 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하면서 또 울고 말았다. 아이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이도 얼마나 무섭고 괴로울까.. 하지만 그때 아이는 우리보다 더 담담했다. 잘 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정말 괜찮았는지....여튼 괜찮다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그러면 왜 이런 증상이 생겼을까? 정말 허리를 펴지 않아서, 자세가 바르지 못해서였을까?
이건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이유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특발성 척추측만증이라고 진단한다) 다만 이유도 없고 선천적으로 타고났을 거라 추측하며, 급성장기때 척추가 급격하게 휜다고 했다. 아이는 만 11세, 초등 5학년이었고, 이미 키가 많이 자라고 있을 때였다. 아마 어릴적에도 조금 휜게 보였을 텐데 역시나 무심한 애미는 전혀 몰랐다. 물론 한쪽 날개뼈가 조금 튀어나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뭐 완벽한 대칭일 수는 없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럼 수술 밖에는 방법이 없는가 정말?
안타깝게도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 경미한 각도야 운동이나 근육 증강 등으로 통증을 완화할 수는 있어도 우리 아이처럼 심각하게 척추가 휘는 경우에는 교정도 되지 않고 교정기도 착용해도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아서 갈수록 더 휠거라고 했다. 성장이 멈추면 척추가 휘는 것도 멈춘다. 하루가 다르게 키가 쑥쑥 큰다고 좋아했었는데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었던 거다.
그냥 모든게 다 내탓 같았다. 아이를 임신했을때 조기 진통으로 병원에 오래 있었는데 그때 맞은 라보파(자궁수축방지제)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임신인줄도 모으고 마셨던 와인 한모금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일한다는 핑계로 잘 챙기지 못했던 탓일까. 아이 몸을 유심히 보지 않았던 탓에 치료시기를 놓쳤던 건 아닐까. 발레랑 수영을 그만두지 말고 계속 시킬걸 그랬나. 나 때문에 아이가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되니 못견디게 괴로웠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