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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쇼콜라 Feb 25. 2024

02.너 등이 왜 이래?!

무심했던 애미가 바로 접니다.

그 날은 정말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침 저녁으로는 제법 공기가 선선해진 초가을의 금요일, 밖에서 저녁을 먹고 남편과 석촌 호수를 천천히 한바퀴 돌았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과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시덥지않은 농담에 터지던 웃음... 집에 들어가기엔 조금 이른 시각이라 차한잔 하기로 하고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근사한 그 카페에서 푸른 빛의 시럽이 들어간 달콤한 라떼를 마시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 그냥 이제 지금처럼 별일없이 살면 좋겠다. 오늘 기분 정말 좋다~"


평소에도 그런 얘길 자주 하긴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기분이 참 좋았다. 원하던 집으로 이사하고, 아이도 큰 어려움 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엄청 넉넉한 건 아니지만 둘이 벌어서 빚도 갚으며 남들 사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살고 있던 때였으니.


집에 들어오니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와 있었다.  평소 보다 좀 일찍 온 터라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다.


"엄마, 나 허리가 너무 아파서 못앉아 있겠어."


그 전에도 허리 아프단 얘기는 종종 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허리가 왜 아플까? 하면서 아이의 옷을 살짝 걷어보았다. 아이의 등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 너 등이 왜 이래???!

놀랍게도 반듯한 1자여야 할 척추가 뱀처럼 S자로 휘어져 있었다. 양쪽 어깨의 높이도 달랐고 골반도 적잖이 틀어져 있었다. 육안으로도 심각한 이상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대체 나는 왜 몰랐을까...걱정과 자책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남편도 꽤 놀랐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내일 병원 가보자며 우리를 달랬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2021년 9월 3일의 일이었다.


그 밤, 정말 근사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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