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라는 것
봉사라는 것
남을 도와주는 것, 기꺼이 나를 희생하는 것. 누구나 칭찬해 줄 수 있는 좋은 말임에도 내게 그것은 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무조건 상대를 도와줘야 한다는 ‘봉사의 정신’이 때로는 내가 그들보다 잘났다는 생각을 먼저 가져다 주지는 않을까? 나로 인해 그들의 변화 없던 삶에 변화 아닌 변화를 불러 일으키지는 않을까? ‘봉사’를 위해 아프리카 땅으로 떠나는 것. 그것이 나의 가장 첫 번째 고민이었다. 다행히 나의 아프리카로의 첫 길을 열어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브릿지사업 (UNESCO Bridge Africa Project)은 지금까지의 일방적인 봉사에 대한 관념을 벗어나 ‘자원활동’이라는 조금 다른 이름으로 다가왔다. 내가 자원활동을 하러 간다는 것은 오히려 남을 도와주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인지, 그것을 이 세상에 나와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것과 더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의 여행에서 배운 ‘나’라는 존재.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줄 아는 시선을 가진 사람, 그리고 나의 존재로 세상의 다른 것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삶. 그렇게 막연하면서도 뚜렷하게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아프리카 땅에 올랐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아주 대단한 무언가를 얻기보다
내 몸뚱어리로 자립해서 살아가는 아주 근본적인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행복과 즐거움을 찾고 싶었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마음은 열려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삶을 말이다.
손으로 직접 빵을 굽고 매일 아침 걸레질을 하고
더러운 옷과 신발을 깨끗이 닦아내는 법을 배우고
두 발로 하루 종일 마을을 돌아다니며
내 정신을 육신으로 채워나갔다.
또 내 육신을 정신으로 채워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지난 2년 내 인생은 한갓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레소토라는 나라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음식, ‘리조토’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막상 레소토가 위치한 곳을 설명하면 다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공) 에 있는 작은 도시로 생각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레소토라는 나라를 미리 알고 있었다. 인도와 네팔을 여행할 당시, 남아공에서 온 친구에게 산을 좋아한다고 소개하자, 나에게 레소토라는 나라를 추천해 주었었다. 그렇게 히말라야에서 받았던 산의 정기를 기억하며 레소토라는 나라를 언젠가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었다.
내게 처음 아프리카로의 길을 열어준 것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브릿지사업으로 1기 자원활동가로 참가할 기회가 생겼다. 브릿지사업은 기존의 개발사업이 가지고 있던 일방적인 원조와 결과중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오랜 연구 끝에 새롭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의 청년들을 아프리카 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역에 직접 파견함으로써 지역 주민과 가장 가까이서 그들의 욕구를 발견하고 주민 스스로의 주인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개발협력을 강조하였다. 당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자 하는 국가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6개국 (남아공, 레소토, 르완다, 말라위, 잠비아, 짐바브웨) 였다. 그 중에서도 나는 단연코 ‘레소토’에 가는 것을 희망하였었다. 고산지대의 장엄한 자연경관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더불어 이왕 개발협력에 참가하는 것, 한국인이 드물고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2010년 10월, 가슴 속 뜨거운 꿈을 안고 레소토에 도착했다.
레소토에 도착하니 레소토유네스코국가위원회 담당자들과 우리가 파견될 지역을 직접 담당해 줄 현지 NGO기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소토국제워크캠프를 담당하는 NGO기관에서 한국에서 온 청년 3명에게 각자가 파견될 지역에 대한 설명과 우리의 관심과 기대를 물어보았다. 당시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 땅에 도착했다는 설렘과 내게 주어진 2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던 나였다. 본인이 기대하는 내용이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에 나는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지역 주민들과 가장 가까이서 이곳 레소토
전통 그대로의 삶과 문화를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2년의 보금자리가 된 마을이 정해졌다. 레소토 수도 마세루에서 약 120km 정도 떨어져 있는 남쪽 마할레수크 (Mohale’s Hoek) 라는 지역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 디피링 (Liphiring) 마을이었다. 레소토유네스코국가위원회 관계자 분들의 도움으로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한창 달리다 보니 저녁 6시 해가 질 무렵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입구에 위치한 초가지붕을 연상시키는 전통가옥이 나의 집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동굴처럼 어두운 방 안에서 자연스럽게 전깃불을 찾는 나를 발견하였다. 하지만 이곳에는 마을 전체 전기가 없는 곳이었다. 당장 짐을 풀기 위해 성냥을 사용해서 양초에 불을 밝혀야 했다. 지난 24년간의 한국에서의 도시에 삶에 익숙했던 내게 성냥을 피우는 데 시간이 걸릴 정도로 처음 그 순간은 앞으로의 시간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선 대략의 짐을 풀고 가지고 온 침낭 속에 들어가 첫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며 눈을 떴다. 어젯밤 내가 느꼈던 괜한 걱정과 두려움은 기억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괜한 욕심을 버리고 내게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는 순간, 잠시 몸이 불편한 것은 잊혀지게 되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나는 2년을 살고 왔다. 2년의 긴 시간. 내 가족과 친구, 이웃이 남아있는 곳.
그 동안의 모든 편안과 사치를 내려놓으며 평생의 잊지 못할 단 한번뿐인 삶의 진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기가 없어 촛불을 피우고 나무장작으로 요리를 하고 등유히터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던 곳. 짚으로 덮인 전통가옥 지붕 아래 천둥번개가 치는 여름날이면 온갖 먼지가 얼굴에 떨어지기도 했고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에는 난방장치가 없기에 6겹의 옷을 껴입고 4개의 담요를 둘러 덮고 잠에 들어야 했다. 집 안에 화장실이 없기에 밤새 요강으로 해결해야 했다.
전기가 없고 수도시설이 없고 화장실 (재래식) 이 밖에 있는 2년의 삶을 살고 온 내게 사람들은 많이들 질문했다. “힘들지는 않았나요?”
* 레소토 언어 세소토 (Sesotho) 에는 알파벳 ‘L’이 ‘Li’ ‘Lu’ 로 표기되는 경우 ‘D’ 발음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