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써내려간 민족의 편지_설운도의〈잃어버린 30년〉
TV 자료화면 속에서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처음 본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서로를 끌어안은 형제의 떨리는 어깨,
“어머니는요... 우리 어머니는...?” 하고 묻던 목소리.
그리고 곧이어 무너져내리듯 터진 울음.
그 장면을 보던 내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유년의 기억은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는 걸,
그 화면이 말해주고 있었다.
한국전쟁은 끝났다고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속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6월, 호국보훈의 달. 오늘 나는 한 곡의 노래를 꺼내려 한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숨죽여 울었던 사람들,
그들의 잃어버린 세월을 달래주었던 한 곡의 트로트.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1983년 여름, 대한민국을 울린 한 편의 생방송.
KBS <이산가족 찾기 특별 생방송>은 처음엔 몇 회 분량으로 기획된 특집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방송이 시작되자 전국에서 이산가족들이 몰려들었고, 화면 속 상봉 장면은 그 자체로 시대의 눈물이었다. 138일간 453시간 45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역사적인 생방송이 되었다.
그 눈물의 한복판에서 이 곡이 태어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삼십 년 세월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우리 형제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 메이게 불러봅니다
이 노래는 당시에는 무명가수였던 설운도의 목소리로 처음 울려 퍼졌다.
작사가 박건호는 한밤중,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TV로 보던 중 눈물에 복받쳐 펜을 들었다고 한다.
"30년 세월"이라는 문구가 떠올랐고, 그 말이 가사가 되어 곧바로 녹음되었다.
그 날 아침 9시에 녹음된 이 노래는 그날 밤 10시, 이산가족 생방송 배경음악으로 바로 방송을 탔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이 곡은 ‘가요사상 가장 빠르게 히트한 노래’로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노래 속에는 단지 전쟁의 상흔만이 아니라, 이산된 가족을 향한 절절한 기다림, 말하지 못했던 울음, 꺼내지 못한 이름이 담겨 있었다.
최근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젊은 가수들이 잃어버린 30년을 불렀다.
2020년 TV조선 ‘미스터트롯’에서 이찬원이 이 곡을 불렀고, 2024년 ‘미스트롯3’에선 배아현이 다시 불러 눈물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 노래만큼은, 원곡자를 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설운도의 목소리는 이산가족의 세대와 가장 가까운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무게가 있다.
그는 직접 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전쟁을 품고 살아온 부모 세대의 아픔을 어릴 적부터 온몸으로 느끼며 자란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이 노래를 부를 때, 슬프다는 감정보다 더 깊은, ‘한’이라는 말조차 모자란 울림이 느껴진다.
어떤 가수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렸다고 상상하며’ 이 노래를 부른다고 말했지만,
설운도는 실제로 그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온 세대였다.
올해 초, KBS <가요무대>의 첫 무대에서 설운도가 부른 이 노래를 다시 보았다.
시간이 흘러 주름진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단추 셔츠와 진심이 담긴 무대 매너가 있었다. 이 곡을 듣고 들으며 가슴 아파할 그 누군가에 대한 예의와 위로가 담겨 있었다.
“우리 형제 다시 만나 못다한 정 나누는데...”라는 구절에서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 "통곡"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벼랑 끝까지 데려다주는 그 울림.
아, 이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세대에겐 설운도가 ‘사랑의 트위스트’를 부르며 유쾌한 예능감을 뽐내는 가수로 기억될지 모른다.
하지만 어른 세대가 그를 ‘원조 트로트 가수’로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단지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고, 품어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보훈은 묘역에 바치는 국화만이 아니다.
노래 속에서 살아남은 기억을 꺼내어 다시 마주하는 일,
그리고 그 기억을 타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서사로 껴안는 일이다.
우리는 아픔을 가진 이의 아픔을 대신해줄 수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주고, 함께 마음을 기울이는 일.
그리고 다시는 같은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보훈’ 아닐까.
1983년,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 나온 그 수많은 얼굴들.
그분들은 지금도 그 한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이 노래는 남아, 그날 흘리지 못한 눈물과 꺼내지 못한 말들을 대신 전하고 있다.
트로트는 흘러간 노래가 아니었다.
그 시절을 견딘 사람들의 목소리였고,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다시 불러야 하는 기억이었다.
“의지할 곳 없는 몸이 서러웠다”는 가사 속 고백을 들어주자.
국가와 이웃이 그늘이 되어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국가유공자와 독립유공자, 이산가족에게 따뜻한 손길이 닿는
진짜 ‘호국보훈의 달’이 되기를.
<잃어버린 30년>에 담긴 마음을 헤아려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