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어가는 화합의 노래_강진의 <붓>
<붓>을 처음 들은 건 미스트롯2 최종 결승 무대였다.
그날 무대에 오른 양지은은 단단하고 따뜻한 목소리를 지닌 참가자였지만, 최종 우승자인 ‘진’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무대가 시작되고,
“힘겨운 세월을 버티고 보니 오늘 같은 날도 있구나”
라는 첫 소절이 흐르던 순간,
이건 결승전이 아니라 한 폭의 산수화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 노래를 결승곡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
“그동안 함께 고생한 선후배 참가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고 말했다.
승부보다 함께 견뎌온 시간에 대한 위로, 경쟁보다 공존의 마음을 전하는 무대.
그 순간 나는,
트롯이라는 장르가 품고 있는 깊이와 넓이를 다시 느꼈다.
울리지 않아도 마음을 흔들 수 있고, 싸우지 않아도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게 바로 <붓>이란 노래다.
양지은의 무대는 따뜻하고 선해서,
노래 전체에 핑크빛 광택이 감도는 봄 풍경을 떠오르게 했다.
그 위로 진달래 한 송이처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피어났다.
강진의 원곡 버전을 찾아 들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가 떠올랐다.
진한 먹빛과 단단한 필치, 그리고 산천처럼 묵직한 감정선.
강진의 저음은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남는 울림을 품고 있었다.
특히 “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는 말은
마치 친구에게 조용히 건네는 화해의 악수처럼 느껴져 들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졌다.
생각해보면 화해란 감정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려워진다.
어릴 적엔 친구와 다투면 어떻게든 풀고 싶었지만,
중년이 되면 멀어진 관계에 무심해져 화해의 노력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연륜을 지닌 목소리로 전해지는 화해의 노래는 더욱 깊게 다가온다.
“힘겨운 세월을 버티고 보니 오늘 같은 날도 있구나.”
이 노래의 첫 문장은, 마치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오랜만에 만난 벗과 나누는 묵묵한 인사처럼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 한 줄—
“칠십 년 세월, 그까짓 게 무슨 대수요. 함께 산 건 오천년인데.”
분단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너머의 긴 역사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인상 깊다.
이런 말들이 과장이나 강요 없이, 담담하게 마음에 스며든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하는 세 줄—
“잊어버리자, 다 용서하자, 우린 함께 살아야 한다.”
이 문장은 단순한 덮음이 아니라,
기억하되 증오에 머물지 않고, 함께 미래를 써 내려가자는 제안처럼 느껴진다.
“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 / 한 줄 한 줄 적어나가세 / 여보게 친구여, 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
붓이라는 상징은 총이 아니라 펜을, 상처가 아니라 기록을 말한다.
그 어떤 연설보다 조용하지만, 훨씬 강한 메시지.
호국보훈의 완성은 평화다.
기억하되 다정하게,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트롯은 늘 사랑을 노래해왔다.
그 사랑이 때로는 연인이었고, 때로는 부모였으며,
<붓>에서는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었다.
이 노래가 전하는 사랑은 뜨겁지 않고, 조용히 마음을 감싸는 온기 같은 것.
어떤 날엔 멀어진 친구가, 어떤 날엔 말없이 등을 돌린 가족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붓 하나 건넬 수 있을까. 당신이 먼저 한 줄 써 내려가자고 말할 수 있을까.
호국보훈이 단지 국가의 기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 기억의 태도가 되기를 바란다.
서로에게 남은 상처 위에 다정한 말을 덧쓸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노래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 아닐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다.
그래서 이 노래를 ‘아모르 트롯’ 에 담았다.
분단의 시간을 지나, 다시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