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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갑천씨

2. 청년 갑천씨

by 씬디북클럽


갑천씨는 청년이 되었다.


어서 키가 자라고 빨리 힘이 세어지길, 그래서 이곳을 떠날 수 있길.


청년 갑천씨는 바라고 또 바랐다.



둘째 형의 추천으로 갑천씨는 한국전력에 취직했다. 낙하산으로 들어온 가방끈 짧은 갑천씨에게는 월급의 기쁨도 승진의 기대도 없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허드렛일을 하고 밤늦게 돌아오는 일상은 숨이 막혔다. 그 누구의 응원도 격려도 원치 않았다.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았다.


갑천씨는 자유로운 생활을 원했다.

여행 같은 인생을 꿈꾸었다.


운전면허 시험을 단번에 붙었다. 트럭을 몰고 마음껏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는 일은 즐거웠다. 새벽 깡시장에서 배추와 무를 실어 날랐고, 수산 시장에서 비린 것들을 배달했다. 온종일 운전대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다른 일이 아쉽지 않았다. 남의 눈치 볼 것 없는 생활이 좋았다.




갑천씨와 혜옥씨는 거래처에서 만났다.

혜옥씨는 갑천씨가 배달일을 하며 오가는 작은 회사의 경리였다. 믹스 커피를 타서 건네는 종이컵을 받을 때마다 갑천씨는 웃으며 말을 걸었지만 혜옥씨는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갑천씨는 인물 좋고 말 잘하고 흥 많고 노래 잘하는 젊은이였다. 호감을 표시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갑천씨는 조용하고 참한 여자를 아내로 들이고 싶었다. 아들 낳고 딸 낳고 ‘가정’이라는 것을 일찍 꾸리고 싶었다.


갑천씨에게 혜옥씨는 제격의 여자인 것만 같았다.


무려 여상을 졸업했으니 나보다 아는 것도 많을 것만 같았다.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을 다잡은 다음 날, 갑천씨는 종이컵을 건네는 혜옥씨의 손을 슬쩍 잡았다. 그날 저녁 혜옥씨는 갑천씨의 용달차 옆자리에 앉아 퇴근했다.


혜옥씨의 아버지, 장인이 될 어른은 인상만큼이나 성격도 꼬장꼬장했다.

삐쩍 마른 체격은 신경질과 예민함이 느껴졌고, 작지만 날카로운 눈매는 사람을 뼛속까지 뚫고 들여다보는 느낌을 들게 했다. 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고 직업도 수입도 불안하고 게다가 전라도 출신이라니, 장인의 반대는 완강했다. 넉살 좋고 성격 좋은 갑천씨였지만 호랑이 장인 앞에서는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옆에 조용히 앉은 장모가 한 번씩 던지는 눈길이 모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코로 넘어가고 귀로 넘어가는 저녁상을 물리고 나왔다. 갑천씨는 혜옥씨를 용달차 옆자리에 태웠다.


그날 밤 혜옥씨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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