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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갑천씨

1. 잘생긴 갑천씨

by 씬디북클럽

갑천씨는 뇌종양으로 죽었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작은 요양 병원 중환자실,

5월의 비가 부슬거리던 밤이었다.





갑천씨는 1953년 2월 19일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났다.


생년월일이 정확한지는 분명치 않다. 많은 아이가 태어나고 이내 죽어나던 시절이었다. 기기 시작하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고 걸음마를 시작했어도 고열 한 번이면 곧 숨이 끊어지던 시절이었다. 정말 생일이 맞는지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평범한 촌부였다.


어쩌면 천하태평 한량 같은 사내였다. 바지런한 농사꾼도 성실한 남편도 아니었다. 아비로서 엄하지 않았지만 인자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한 잘생긴 이목구비를 가졌다. 아버지의 외모를 많이 닮은 건 자식들 중 갑천씨라고 마을 사람들은 종종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갑천씨는 왠지 주먹이 불끈 쥐어지곤 했다.


어머니는 일찍 병으로 죽었다.


얼굴이 기억날 듯 말 듯했다. 어머니의 흑백 사진으로 봐서는 자신은 분명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걸, 갑천씨도 알았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돋아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는 곧이어 새장가를 들었다. 남자 혼자 못 살던 시절이었다. 새장가든 헌 장가든 남자에게는 전혀 흠 될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갑천씨는 5남 2녀 중 딱 중간 자식이었다.


나이 차 많이 나는 큰 형은 일찍부터 담배와 술을 배웠다. 둘째 형은 큰형을 욕하며 보란 듯이 열심히 공부했고 먼 친척의 지인이 추천한 한국전력에 취직했다. 누나는 부잣집에 시집을 갔다. 남동생은 큰형과 비슷한 길을 비슷하게 갔다. 막내는 혼자 벌어먹게 되자마자 부산으로 떠나 소식을 접었다. 가장 막내인 여동생은 새어머니가 낳은 딸이었다. 갑천씨를 많이 따랐지만 애정도 애증도 크게 없었다. 위아래로 또 다른 자식들이 있었는지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7남매의 학업에 관심이 없었다.


갑천씨는 제법 공부를 했다. 운동도 잘 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6학년 담임 선생님과 아버지의 진학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부디 담임 선생님이 아버지보다 힘이 세길, 갑천씨는 바라고 바랐다. 교무실에서 아버지가 나와 긴 복도를 저만치 먼저 걸어갔다. 뒤따라 나온 담임 선생님은 말없이 갑천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천씨는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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