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천씨는 혜옥씨와 백년가약을 맺고 싶었다.
괜찮은 예식장을 찾아 하얀 드레스를 입히고 식을 올릴 돈이 없었다. 도움받을 부모 형제도 없었다. 작은 방 한 칸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갑천씨의 이야기에 혜옥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인은 노발대발했다.
혜옥씨는 오 남매 중 가장 눈치 빠르고 싹싹한 셋째였다. 언니 오빠 뒷바라지에 동생들 앞바라지에 미안한 마음이 늘 가득했었다. 미안한 마음 같아선 저 원하는 대로 선생님이 되게 해 주고 싶었지만 시절은 마음같이 할 수 없었다.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눈으로 여상 원서에 이름을 쓰던 셋째의 뒷모습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넉넉한 집까지는 아니어도 없는 집에 보내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런 혜옥씨가 갑천씨를 데려왔다.
본인 입으로 없는 집안이라고 했다. 부모 형제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식도 없이 작은 방 한 칸에서 시작하겠다고 했다. 장인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갑천씨와 혜옥씨를 위한 예식장은 없었다.
그 대신 보건소가 있었다.
보건소 한켠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가난한 부부들이 무료로 식을 올릴 수 있었다. 높이가 맞지 않아 덜컹대는 의자 몇 개를 세워 놓고 신랑 신부 입장을 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지역 유지들 몇몇이 돌아가면서 주례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양복과 드레스는 돌려가며 입을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가난한 연인들을 위한 소박한 곳이었다.
갑천씨와 혜옥씨의 결혼식날이었다.
예물도 혼수도 신혼여행도 없는 결혼이었다. 양가 친척들이 자리를 채웠고 무심한 눈빛으로 박수를 쳤다. 장인과 장모가 혜옥씨 옆으로 앉았다. 아버지와 큰형수가 갑천씨 옆으로 앉았다. 주례는 신랑 신부의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건조하게 외운 주례사를 읊었다. 진심 어린 축하도 크나큰 격려도 없었다. 그 시절 그만그만한 넉넉지 않은 두 집의 평범한 예식이었다.
결혼식이 끝났다.
갑천씨는 혜옥씨를 용달차에 태우고 월미도로 향했다.
혜옥씨의 진달래빛 한복치마가 바닷바람에 흩날렸다. 시집살이로 속 썩이는 문제는 없을 거라고, 호강시켜 주겠다는 약속도 없을 거라고 했다. 열심히만 살자고 했다. 아들 낳고 딸 낳고 평범하게 살자고 했다. 매서운 2월의 바람에 혜옥씨의 볼이 진달래빛으로 물들었다.
스물 여섯의 갑천씨와 스물 둘의 혜옥씨는 이듬해 4월 딸을 낳았다.
다시 3년 후 봄, 아들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