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옥씨는 알뜰했다.
갑천씨가 한 장 두 장 벌어다 주는 돈을 살뜰하게 모았다. 구겨지거나 찢겼어도 돈은 돈이었다. 한 장 한 장이 아쉬웠다. 바지런하게 모았다.갑천씨 혼자 벌어서는 힘들었지만 남매를 두고 직장을 다닐 수도 없었다. 갑천씨는 남매가 집에 오면 엄마가 집에서 맞이해 주기를 바랐고 혜옥씨도 그러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소일거리와 부업은 모조리 찾아서 했다.
혜옥씨는 손끝이 야무졌고 성실했다.
신혼 단칸방에서 시작해, 거실 하나를 두고 방 세 개에 세 가족이 살던 이층 집을 거쳐, 방 2개짜리 주공 아파트로 이사했다. 때 묻은 지폐들은 딸아이 책상과 피아노가 되어 한 자리를 차지했다. 88 올림픽 선수촌 숙소에서 사용했다는 소파를 헐값에 들였다. 소파 놓을 구석도 버거울 즈음 혜옥씨는 새 아파트 모델 하우스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동네 엄마들과 부동산 중개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갑천씨는 의아했다.
지금 당장 집을 살 돈이 없는데 집을 살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혜옥씨는 본인보다 많이 배웠고 무엇보다 여상을 졸업했으니 숫자에 관해서는 믿음직스러웠다. 갑천씨는 혜옥씨가 하자는 대로 했다. 갑천씨의 협조 비슷한 무관심과 혜옥씨가 귀동냥한 정보력과 1980년대 부동산 시장의 광풍을 타고 갑천씨는 본인 명의의 24평 아파트를 가질 수 있었다.
결혼 12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