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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갑천씨

6. 갑천씨의 명절

by 씬디북클럽


갑천씨는 일 년에 단 이틀만 쉬었다.

설날과 추석이었다.



명절 전날이면 혜옥씨는 남매를 데리고 1호선 국철을 탔다. 남영역에 내려 끝도 없는 언덕길을 남매의 손을 잡고 오르고 또 올랐다. 차례를 모시는 둘째 형님 집이다.


혜옥씨가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이는 동안, 남매는 사촌들과 얼음땡을 하고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명절 전날에도 갑천씨는 온종일 운전을 했다. 아무도 없는 집으로 귀가해 혼자 잠을 잤다.


갑천씨는 명절 당일 혜옥씨와 남매와 형님 가족들이 있는 서울 중림동으로 향했다. 부엌에 있는 혜옥씨를 한 번 쓱 보고는 생때같은 딸과 아들을 찾았다. 생율을 집어 오도독 씹어 먹다가 둘째 형수에게 등짝을 맞곤 했다. 큰형도 동생들도 이번 명절에도 보이지 않는구나 소리 없는 혼잣말을 했다.


차례를 지내고 다들 고스톱을 치는 동안 갑천씨는 안방 구석에 놓인 목침을 베고 누워 코를 골며 잠을 잤다. 한숨 자고 일어나 근처에 사는 누나 집에 들러 딸아이가 치는 피아노 연주를 듣고 과일을 먹었다.


저녁은 인천 처가에 가서 먹었다. 장인은 여전히 사위를 반기지는 않았지만 내쫓지는 않았다. 장인은 공부를 곧잘 하는 외손녀에게 이다음에 꼭 대학교 교수가 되라고 했다. 중학교도 못 나온 사내의 여식도 대학교라는 곳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 갑천씨는 궁금했지만 조용히 듣기만 했다.


장모가 챙겨주는 음식들을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네 식구가 앞 좌석에 모두 타기에는 점점 좁아졌다. 남매는 집에 오는 길에 하나둘 잠이 들었다. 다 왔다고 깨워도 특히나 딸은 일어나지 않았다. 갑천씨는 딸이 자는 척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대로 안고 들어가 이부자리에 눕혔다.


남매는 자라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명절 전날 혜옥씨 혼자서 서울 형님댁으로 갔다. 남매는 학교 학원을 마치고 아빠를 기다렸다. 명절 전날 갑천씨는 평소보다 일찍 귀가했다. 남매를 갑천 용달에 태우고 신포 시장 골목으로 갔다.


매년 같은 분식집으로 들어가 우동 순대 떡볶이 오뎅을 주문했다. 남매는 코를 박고 먹었다. 만 원 남짓으로 함께 먹는 한 끼였다. 일 년에 이틀, 셋이 함께 하는 저녁이었다. 남매는 명절 특선 영화들을 보다가 늦게 잤다. 갑천씨는 일찌감치 코를 골며 잠들었다. 일 년에 이틀, 자명종 없이 잠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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