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긴. 죄다 완전히 다른 걸. 이건 민소매고, 이건 레이스고, 이건 리넨으로 편하게 입는 거, 이건 셔츠처럼 단추를 채우고 허리띠를 하면 옆으로 촤라락 예쁘게 펼쳐지는 스타일. 어머, 이건 언제 산 거였지?"
완전히 서로 다른(!) 핑크 여름 원피스 모음
나의 옷장 속 핑크는 모두 비슷하고,
모두 제각각의 분홍을 안고 있다.
연분홍과 진분홍, 혹은 인디핑크와 핫핑크가 난무하는 옷걸이에가족들은 질색을 했다. 마음에 들어 하나하나 사 모은 비슷하면서도 (내 눈에는) 확연히 다른 원피스들이 많긴 많았다. 셔츠도 분홍 계열이 가장 많다.
MBTI 가 없던 시절에는 혈액형으로 사람의 유형을 나누곤 했다. 패션 잡지 한편에 자리한 혈액형 별자리 문구 몇 개에, 나의 취향과 선호를 쉽게 정해버렸다. B형에 황소자리, 남사친들과 어울리기는 좋아했던 말괄량이 소영이에게는 초록이나 파랑이 어울린대. 분홍이 끌릴 때도 있긴 한데... 안돼! 너는 초록이나 파랑이 어울린대, 어울려야 한대. 그렇대... 메아리처럼 다가온 나의 선호색상은 핑크가 아니었다.
마음속에만 품어 온 핑크 본능은 3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원피스를 비롯해 텀블러, 다이어리, 필기구, 가방, 코트나 재킷 등 다양한 핑크들을 모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핑크 표지의 책장도 한 칸을 채운다.
핑크 책장 한 칸과 제 얘기인가요, 그림책 <핑크 공주>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대신에 "파란 내의를 살까요, 분홍 내의를 살까요?"라고 묻는 산모에게 의사는 연두색을 사라고 했던가, 노란색을 사라고 했던가. 딸 키우는 엄마의 로망을 온갖 핑크 아이템으로 이루었다. 누나의 옷을 많이 물려 입은 아들은 핑크를 싫어하지 않는 진정한 남자로 자라고 있다.
"야리야리하고 공주과의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격의 여자들이나 핑크를 좋아할 거야."라고 제멋대로 말하라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의 벚꽃 팝콘처럼, 핑크는 기분 좋고 설레게 하는 힘이 있다. 무겁지 않고 심각하지 않고 못나지 않고 어둡지 않은 분홍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핑크'하면 떠오르는, 슬며시 미소 짓게 되는 누군가가 되고 싶다.
오래오래 분홍빛 다정함을 품고 싶다. 사랑스러운 말과 행동을 나눌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분홍색이 어울리는 예쁜 할머니로 곱게 나이들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