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전북 완주에 위치한 소양 고택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플리커책방에서 와인과 함께 한 시와 그림책 북토크에 참여했다. 카페 두베에서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조식과 차를 들었다. 그 가을의 시작은 호사로웠다.
완주에 살고 계신 시인님의 댁을 방문했다. 강아지 소양이와 사모님과 나무와 풀과 꽃과 밭과 돌과 함께 하는 공간은 아담하고 조용했다. 마당에 널린 빨간 고추와,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은 거름망이 말라가던 햇살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내어주신 천일홍 차와 과일을 앞에 두고 시인님 곁에 앉았다. 각자 들고 온 초록색 시집을 펼쳐 와닿은 시를 한 편씩 낭독했다. 용접공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손은, 이제 펜을 들어 글을 쓰고 시를 쓰고 삶을 쓴다.
그때 낭독했던 시 말고 다른 시 한 편이 들어온다. 시인님과 사모님의 고즈넉한 공간이 시 속에 담겨있다. 문득 그런 모습으로 함께 나이 들어가면 어떨까, 가진 것 없어도 나누며 살면 어떨까. 아직은 인생의 파도를 넘나드는 힘든 시절을 통과하고 있지만, 그리고 나면, 아주 먼 훗날 어느 미래에는 함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높은 산 보고 낮게 사는 법을. 흘러가는 기쁨을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