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경 Jan 12. 2024

누구 소개로 연락 주셨을까요?

국내 최대 로펌, 유명 노동법 W변호사

안녕하세요. □□□ 변호사 ○○입니다
보내주신 메일 읽고 전화드립니다

 2018년 12월 26일 22시 연말모임으로 늦은 시간에도 사람이 북적였던 선릉 지하철 계단을 올라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받은 전화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절망에 빠진 순간 마지막 보루로 서울시청 근처 스타벅스에서 국내 최대 로펌 유명 노동법 변호사 W님께 메일을 썼다. 내 시야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반짝이는 트리 사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고 있다. 내 옆에는 아픈 손가락 C가 함께 있다.


 나, G, C는 2018년 6개월 간 모피회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이다. 나는 실장이었고 직원 G와 C는 나와 같은 날 퇴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11월 12일 해고당했고, G와 C는 모피회사 대표 H가 붙잡았지만 퇴사의사를 밝혀 괘씸죄로 덤터기를 쓴 직원들이다. 자세한 내막은 사건과 연관된 이들이 많고, 서술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기에 언급을 자제한다. 이제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나는 많이 어리석었다.


 18년 5월 17일부터 11월 12일까지 6개월 근무했다. 양한 직종에서 근무해 봤지만, 나름의 탄탄한 회사에서도 일했었는데 내가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나.. 도대체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은 날들이었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 석 달 그렇게 6개월을 그곳에 있었다. 진작에 아니다 싶으면 나오면 될 것을 나는 왜 그곳에 있었을까. 무언가에 씌었을까, 어설픈 정의로움 이랍시고 암흑천지에서 내가 한 선택들은  곁에 지켜야 할 동료들을 지키지 못했고 나조차도 위태로웠다. 정의로울 그릇 따위 되지도 않으면서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와 같은 시기 퇴사한 직원들은 내용증명을 받았고 H대표는 나에게 3000만 원, C에게 2000만 원, G에게 1000만 원의 민사소송을 걸었다.


 살면서 내용증명을 받아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소송을 진행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31살에 퇴사선물로 내용증명을 받고 32살에 민사소송을 했다. 나, G, C의 전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재력을 가진 H대표의 민사소송에 우리는 대응해야 했다.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두 친구까지 피해를 봤다는 생각에 더 괴로웠다. 상황을 감당해 낼 능력도 안되면서 일을 터뜨려버린 나를 원망했다.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이후 타인을 위해 섣불리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다.


 무섭고 끔찍한 날들을 보냈다. 엄마에게는 살짝 언급했었다. 엄마는 나의 선택들을 말렸다. 그냥 하루빨리 그곳에서 퇴사하라고 했었다. 나는 가족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내 수중에 당 1억이 있다한들 H대표에게는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고, 의 잘못은 법원의 판결에 따처분을 받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C와 함께 서울시 무료법률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2018, 2019년도 기준 변호사 1인당 10분 정도 상담 시간이 주어졌다. 10명이 넘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 배정은 랜덤인데 이혼전문 변호사와 주로 매칭된 기억이 난다. 지인을 통해 건너 소개받은 로펌 변호사도 만나보고 네이버 상단 노출 변호사와도 통화해 봤다. 평소 소송을 밥 먹듯 하는 H대표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이 분야 최고 윗사람의 조언이 필요했다. 나는 시청 앞 스타벅스에서 리나라 노동법에 대해 가장 경험이 많은 변호사를 찾아봤다. 국내에서 제일 유명한 로펌에서 노동법 관련 독보적인 인물. 노동법 승소판결 기사를 검색했고 6시 퇴근 전 K로펌 W변호사님 사무실로 전화했다.


개인 소송건은 맡지 않습니다.
누구 소개로 연락 주셨을까요?

 누구 소개라.. 전화받으신 직원분은 매우 친절하셨다. 친절하게 응대해 주시는 심플한 질문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소개해준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솔직히 말했다.  상황을 서술한 메일을 W변호사님께 전달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종교가 없지만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하느님, 부처님이 계신다면 누가 되었든 한 번만 도와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청했다. 그렇게 받은 전화였다. 내 마음이 얼마나 벅차오르고 떨렸을지 이 글로 표현이 될까, W변호사님은 나의 나이를 물어보셨다. 아들과 또래라고 하셨다. 변호사님 명의 청년들에게 이틀뒤 귀한 저녁 시간을 내어주셨다.


 12월 28일 저녁 W변호사님과 C, G는 대학로 인근 한정식 식당에서 만났다. 가방에는 H로부터 받았던 내용증명, 소장있었다. 변호사님은 오시자마자 서류부터 검토하셨다. 대형 로펌 소속이라 직접 수임은 포기하셨지만, 노동법에 최적화된 후배들과 장시간 회의 하시며 중앙법률원 Y변호사님을 소개해주셨다. 에서 직접적으로 나서는 것 대신 뒤에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주시며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셨다. W선생님과의 장시간의 대화로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바쁜 시간 중에도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 주셨다.


 아무런 인연 없는 나에게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진 동아줄 같았다. 정말 꿈같은 날이었다. 식사만은 꼭 대접하고 싶었는데 W선생님은 한사코 거절하시며 청년 셋에게 응원의 식사와 분위기 좋은 펍에서 맥주도 사주셨다. W변호사님이 소개해주신 후배 Y변호사님께서도 W변호사님이 이 소송건을 매우 신경 쓰고 계신다며 지속적으로 상담해 주셨다. 이후 컨택포인트를 일원화하여 Y변호사님과 상담을 수차례 이어갔지만 W변호사님, Y변호사님 모두 상담료를 거절하셨다. 그저 진심으로 내가 잘되기를, 하루빨리 해방되기를 바라셨다.


 2021년 2년이 넘어서야 민사소송은 100% 승소 판결을 받았다. H대표가 시간을 끌고 출석하지 않거나 항소하나 여러 가지로 질질 끌어 좀 더 오래 걸렸다. 소송 후 H대표는 파산신청을 하였고, 나의 순위는 18번째였던 것 같다. 앞번호에 큰돈 받을 곳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소송비용으로 쓴 돈을 한 푼도 못 받았다. 소송 니아인 H는 이미 나에게 소송 걸 때 파산신청 할 계획이었나 싶다.


 2019년 봄, 현 남편을 만났으니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도 소송과정을 여실히 다 파악하고 있다. 남자친구와 주말에 건대 앞 알파문구에 소장을 제본하러 간 기억이 난다. 남자친구가 찬찬히 소장을 읽어볼 때 나는 아주 작아졌다. 남자친구와 건대 호수 앞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남편과 웃으며 그때를 이야기한다. 소송금액은 1원도 못 받았지만 웃을 수 있는 현실에 매우 감사한다. 인생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W변호사님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귀인특집을 쓰고 싶은 순간에 W선생님 이야기는 꼭 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어렵고 어지러운 순간들을 민감한 부분은 걷어내고 당시 감정상태 글로 담아낼 수 있을까, 가장 고민하며 썼던 챕터다.


 지나 보니 알게 된 것. 나는 그냥 조용히 그 회사를 나왔어야 했다. 회사가 아닌 사람이라 치자. 이상한 사람, 이상한 집단이 있다면 그냥 조용히 내가 빠져나와야 한다. 그 안에 속해서는 바꿀 수 없다. 그 안의 공기는 내가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끔 영혼을 갉아먹는다. 지나고 보면 왜 그랬지? 왜 그렇게 괴로웠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끊임없이 생각하다 보면 그토록 분노했던 내가 어이없어지는 상황을 스스로 맞이한다. 이제 속한 곳이 이상하다 싶으면 아무 말 없이 떠난다. 진정한 고수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지 않으며, 빠져나와 조용하고 은근한 방법으로 압박한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다.


혹시 올 한 해 수고했다는 연말 선물로
기회를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바람'을 담아 메일을 드려봅니다

 W변호사님께 보냈던 메일 일부이다. 소송 관련 대부분의 메일은 삭제했지만 이 메일은 간직하고 있다. 그때의 간절함이 떠오를 때 한 번씩 보낸 메일함을 들어가 본다. 선생님께 연말인사를 드렸다. 3월 이후 따뜻한 봄에 G, C 티타임을, 당시의 남친이자 현 남편과 함께 화이트와인을 하자고 하셨다.


간이 흘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해방된 친구들과 웃으며 선생님을 만나 뵐 날을 기다린다. W선생님은 암흑천지에 한줄기 빛으로 나타 나의 귀인 15호다.

이전 16화 나를 꿰뚫어 보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