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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째 요가 수련일

오늘의 의식, 마음을 바라보기

by 별경

오늘은 다슬 선생님의 수업이 있는 수요일. 7분 전 도착이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면 숨이 헐떡이는데 여유 있게 화장실도 다녀오고 선생님과 안부 인사도 나눴다. 최악의 미세먼지가 얼른 사라지길, 깨끗한 공기 숨배 가득 들이키며 마음껏 환기시킬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명상으로 시작한다.


오늘 남편이 시킨 서류업무가 생각난다. 보육료 결제는 했었나?


다시 집중.


오, 중심이 꽤 잡히는데?


아 또 안되네.


힘들다. 힘들어서 후다닥 끝내고 싶다. 후다닥 다음 자세로 넘어간다. 후루룩 구렁이 담 넘어가듯 다음자세로 넘어감과 동시에, 나는 왜 이걸 빨리 끝내고 싶은가 싶다. 모든 동작들에 집중하여 수련이 끝나면 몰입한 만큼 몸과 마음의 근력이 생김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느끼면서, 알면서도 후루룩 지나가버리는 나를 본다.


다음에는 뭐가 있나. 다음동작, 다음동작. 다음동작을 빨리 끝내든 느리게 끝내든 40분 수련 뒤에는 '사바사나'가 기다린다. 끝내 쉬게 될 때는 지금 이 순간 조금 더 집중하지 못한 것에 아쉬울 거면서 또 이러고 있는 나를 본다.


자, 반대쪽.

반대쪽 한 세트가 남았다.


아까보다는 조금 낫다. 이 동작 다음에 뭔지를 안다. 알고 겪으니 조금 수월하다. 참을 만, 견딜만하다. 조금 더 굽히고 세우고 견뎌본다.


상체에 땀이 젖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수건으로 닦아내고 오늘 마지막 자세는 머리서기 연습이다. 오늘이 요가 101번째 수련일이다. 10개월 차 요가 수련 중이지만 아직 머리서기는 미완성이다. 발가락 하나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 99번째 수련 때 양발 5초 정도 떨어진 적이 있으나 바로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작년 6월, 19번째 수련에 완벽한 머리서기 자세를 기대하며 모자에 손자수를 넣고 그날을 기념하며 쓴 글이 있다. 그때만 해도 적어도 50번째 수련일에는 화려한 머리서기 자세를 완성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101번째 수련 중에도 아직 나의 머리서기는 미완성이다. 70번째 수련일쯤에는 좌절을 맛봤다. 요가 수련이 첫 경험인 도반분 중 첫 시도에 바로 머리서기를 완성하는 분을 봤고, 나와 비슷한 시기의 도반들이 각자의 머리서기를 완성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고, 머리서기를 향한 움직임을 수련하는 매주 금요일 수업 때는 수업 전날부터 압박감이 생겼다. 마음에 압박감이 심해질 때는 거부감으로,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천천히 완성하고 싶다
지금이 딱 좋다


그러다 어느 날. 수련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서기를 완성하면 그다음에는? 나는 왜 빨리 이 동작을 완성하고 싶은가? 이걸 하고 다음에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이지? 정말 뜬금없지만 몇 년을 바라고 바라던 명품 가방, 명품 목걸이를 결제하던 순간. 사라지던 물욕이 생각났다. 그것이 갖고 싶던 최고의 순간은 그것을 결제하기 바로 전까지였다. 찰나에 스친 그 생각을 마주한 이후, 나는 나의 머리서기가 최대한 천천히 완성되기를 바란다. 딱 알맞은 시기에, 나의 몸과 마음이 제대로 준비된 견고해진 제 때에 머리서기의 자세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고, 더 깊숙이는 그 자세로 가는 여정을 좀 더 깊게 즐기고 싶기도 하다.


정말 공들여서 마음 쏟아 집중하고 애써 얻은 동작의 완성은 얼마나 값질까. 그날을 후다닥 앞당기고 싶지 않아 졌다. 진심으로 이 과정의 날들을 즐기면서부터 내 마음의 조급함, 압박감은 사라졌고 어떤 자세를 하는 수련이든 그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참 좋다.


요가 매트 위의 명상 /롤프 게이츠 지음


<인생 최고의 경험 2가지> 이벤트 진행 중 ~1/24(10pm)


250103 /95번째 수련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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