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디강 Cindy Kang Oct 08. 2022

일러스트레이터,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할까?

미국 베이스 일러스트레이터 시장 고찰 + 추천 링크

일러스트레이터는 한 회사가 아니라 여러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하는 직업이기에 작업을 따오려면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나를, 내 작업물을 어필해야 한다. 좋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거침없이 나와 내 작업물을 뽐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이게 좀.... 어느 순간 문득 거부감이 든다. 이런 일은 예상치 못했다거나 절대 하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어쩐지 기분이 이상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작가들이 지나치게 본인을 낮추는 느낌, 혹은 상대방이 어떤 기회를 주는 사람인지 모른 채로 지나치게 그들의 맘에 드려고 노력하고 있는 느낌. 우리가 뭘 놓치고 있는 걸까? 방법이 잘못된 걸까? 한국보단 미국의 시장에서 더 느껴지는 기분이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친구들과 대화를 해보면서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시장 Gatekeeper의 문제를 알게 됐다.


Gatekeeper는 문지기 같은 의미인데, 이 시장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게이트키퍼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통과해야만 도달하고 싶은 영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러스트레이션 시장을 예로 들자면, 게이트키퍼는 에디터, 아트디렉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술대학의 교수진들, 에이전트 등 나에게 기회를 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작가의 세상은 회사에서 채용하는 과정과 달라서 한 사람에게 선택되어 그 사람의 팀이나 기업을 위해 온 힘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 사람을 따르는 것도 되게 미국적인 것 같은 느낌--학연 지연 혈연으로 돌아가는 나라), 여러 사람과 두루두루 알고 지내면서 가끔 그 사람과 프로젝트가 성사되어 작업하고, 친구가 되고, 서로의 비즈니스를 응원해주고 도와주게 되는 그런 세상이다.


독특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연예계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다. 문제는 뿌연 안갯속에 가려진 부분이 있다는 것도 그들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누구와 아는 사이면 득 될 일이 많고, 작더라도 기회일 수 있으니 열정을 팔아 도전을 해봐야 하고, 돈을 들여서라도 어디엔가 나를 노출시켜야 한다. 연예계와 마찬가지로 일러스트레이션 시장도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프로젝트 단위의 작업을 함께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생긴 시스템일까, 아니면 그저 더럽고 치사한 미국 사회이기 때문일까?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은 많고, 기회를 찾는 사람들은 많다. 그에 비해 기회를 줄 수 있는 게이트키퍼의 수는 현저히 적다는 것이다. 나도 방 안에 먼지 쌓여 가는 캔버스가 많아서 앞으로 방 안에만 있으면 어쩌지- 싶었던 적 많지만, 수상이나 인터뷰 등 누군가에게 그림이 선택되면서부터 여러 기회들이 따라왔고, 큰 미디어에 노출이 되면서 그림을 감상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누군가에게 선택되어 기회가 오는 것은 당연한 시스템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오고 가는 불합리한 부분이 많다.








첫째로, 기울어진 운동장. 한쪽은 할 말을 다하고 한쪽은 불합리함을 말할 수도 없는 시스템. 누군가 위에 있고 누구는 밑에 있는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쪽은 요구사항을 전부 이야기할 수 있고 한쪽은 절대 말할 수 없다. 나는 이걸 이상하다고 인지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출판을 도와주는 에이전트를 예로 들자면, 에이전트는 본인이 받고 싶은 원고의 요구사항을 모두 이야기한다. 에이전트가 하는 일이 가능성 있는 원고를 에디터에게 전달하는 것이니 그들이 원래 하는 일이 이런 거 아닌가 싶겠지만, 이건 싫고 저건 좋고, 이게 아니라면 '거들떠도 보고 싶지 않다'라는 말도 거침없이 하는 에이전트들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준비물인 대박 원고는 작가들의 피땀 눈물로 만들어진 작품이고, 가장 중요한 돈 또한 작가들의 원고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통장에 랜딩 하게 된다. 뭔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이트키퍼는 아마 본인이 가진 힘을 알 텐데 (쏟아지는 이메일과 좋은 말만 해주는 소셜 팔로워들만 봐도) 말이다. 무례하게 말하는 건 그 사람의 태도나 인성의 문제일 테지만, 어쨌든 게이트키퍼는 우리가 작가들과 함께 한 팀이 되어 일을 할 것이니 더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작업을 위해서 까다롭게 요구하는 거라고 말을 한다. 이유가 어떠한들 그들은 공개적인 공간에 말을, 의견을, 솔직한 요구를 한다. 그에 반해 작가들은 감히 어디에 가서 에이전트나 에디터의 일하는 스타일 혹은 최소한의 리스펙조차 요구할 수 없다. 작가들은 일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늘 한구석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systemic discrimination: 선택될 확률이 낮은 사람들이 있는 시스템. 선택이 돼야 기회가 나에게 오고, 그 기회가 성공으로 직결이 되는 사회라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 선택의 확률이 개인마다 다르다. 미국은 정치적, 인종, 젠더 문제에 적극적이지만, 사실 그건 차별이 이제 없다는 게 아니라 차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렇게나 바뀌어야 한다고 모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여전히 동양인 여성에게 우선적으로 기회가 오지 않고, 비자를 가진 외국인, 정치적 탄압으로 인한 난민, 유색인종, 퀴어 등 많은 사람들이 뿌리 깊게 박힌 고정관념과 혐오로 인해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로 POC(유색인종) 작가들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렇지만 그 기회들은 대체적으로 대박이 날 개런티가 없어서 작가들에게 불리한 계약 조건으로 성사된다. 게다가 인종, 문화적 스테레오 타입이 난무하는 작업이 태반이라 결국 제자리걸음임을 느낄 때도 있다. 소리치는 (혹은 그런 척이라도 하려는) 언론에 비해 소비자들, 대중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져 안타깝고, 이건 POC 작가들을 위해 어디까지나 좋은 기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셋째로, 변화가 더딘 시스템. 잠깐, 이게 아니지 않나-하고 뒤돌아보고 고칠 건 고치면서 성장하는 건 이상적이기만 한 꿈일 뿐이다. 작가들이 '이게 불리합니다 이건 변화가 필요합니다' 외쳐대도 변화가 더디다. 몇 년 전, litebox.info라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권리 보호와 공정한 페이를 돕는 그룹을 알게 됐는데, 그때는 드디어 사람들이 눈을 뜨는구나 싶어서 신이 났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변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편리한 길을 찾고 그 편리함은 당연한 권리가 된다. 그게 힘이 되고, 힘이 되는 걸 인지하는 순간 절대 뺏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이렇게 게이트키퍼의 힘은 더욱 커지고 작가들은 더 간절해진다. 누군가는 변화를 외쳐대고 있지만 그냥 어딘가 들려오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작가들이 자신의 위치를 과하게 낮추는 것에 더해,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본인의 연구와 아이디어가 담긴 작업을 포기하고 단지 뽑힐 만한 작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면.... 이 시장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작가들이 본인의 권리를 알고 모두와 동등한 위치에서 존중받기를 바라기에도 힘과 시간이 모자란데, 점점 더 빠르게 게이트키퍼와 작가들 사이 힘의 갭이 커진다. 작가들이 게이트키퍼에게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의지하게 된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오가는 시장이니 누구를 뽑고, 기회를 주고받는 위치가 있는 건 이해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라는 인식이 흐려지면서 힘이 한 방향으로 쏠리게 되고, 다른 한쪽은 감히 입도 빵긋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게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서로를 이해하고 감사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자칫하면 잃기 쉬운 태도라고 생각한다. 아트디렉터, 에디터, 에이전트가 쏟아지는 이메일과 업무를 처리하는 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작가들이 본인의 모든 것을 갈아 넣은 소중한 창작물을 공유하는 것을 이해하기. 이해할 수 없다면 그렇다고 믿을 것. 믿음은 존중의 바탕이 되는 것이니까.


더해서 예술가들이 본인의 권리를 알아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권리는 지켜야 내 것이 된다... 얼마 전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작가인 우리가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알면 더 줏대 있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낮춰야만 선택될 거라는 그런 누구도 부탁한 적 없는 태도로 내 작업물이 선택될 것을 기대하지 말고, 떳떳하게 내 작품이 갈 곳을 선택하고 그곳에 내 소중한 작품을 내어 보내는 태도를 갖추자. 답답한 세상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매일 노력하는 창작가들 무조건 파이팅.










일러스트레이터 계약서, 비용, 권리, 라이선스 등 도움 되는 곳들 (영문)


litebox :: 기업들과 함께 한 일러스트레이션 프로젝트 비용    

https://litebox.info/

AOI (Association of Illustrators) :: 영국 일러스트레이션 협회 리소스

https://theaoi.com/resources/contracts/

Graphic Artists Guild :: 엄청 두껍고 복잡하고 어려운 영문 책이지만 정말 정말 도움 되는 일러스트레이터 교과서

https://graphicartistsguild.org/the-graphic-artists-guild-handbook-pricing-ethical-guidelines/

ART INC. by Lisa Congdon :: 입문자를 위해 쉽게 설명되어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커리어 교과서

https://lisacongdon.com/products/art-inc-by-lisa-congdon

Should I Work For Free by Jessica Hische :: 공짜로 일해도 될까요? 답을 찾기 위한 마인드맵 

http://shouldiworkforfree.com/




:: 221007 16:32



cindysykang@gmail.com

www.cindysykang.com




매거진의 이전글 일러스트 작가의 저작권 vs 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