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강사놀음 07화

내가 내는 소리, 남이 내는 소음

2부 놀음 (치국)

by 신디리

내 사업자등록증의 사업장 소재지는 우리 집이다. 집은 거주지이자 직장인 것이다. 남편이 오전 아홉 시쯤 집에서 나가면, 나는 혼자 남겨져 자동으로 출근을 한 처지가 된다. 집은 24평에 방 둘, 화장실 하나다. 거실에 TV와 소파 없이 6인용 탁자를 놓아두고 나름 재택근무 환경을 흉내 내고 있다.

우리 아파트는 한 층에 다섯 가구가 있는 12층짜리 한 동 건물이다. 완벽한 역세권, 슬세권에 위치해 있다. 1층에 주차타워와 장애인 주차공간이 있어 5 곱하기 11을 하면 총 55 가구가 된다. 2017년 3월에 분양을 받았으니 6년 넘게 살고 있다. 이사 온 지 2,3년 동안은 층간 소음이란 걸 몰랐다. 건물도 나이를 먹으면서 소음을 더 쉽게 유발하는 것인지,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방콕 하는 시간이 많아져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 왜 2, 3년 전부터 소음이 심하다고 느끼게 된 건지 모르겠다.

특히 최근 층간 소음은 이사를 고려하게 만든다. 윗집 총각의 뒤꿈치 걸음마는 6개월 전에 살던 세 살, 다섯 살 남매의 달리기보다 더 많은 짜증을 유발한다. 어린애들의 활동은 9시쯤이면 끝이 났지만 어른의 활동은 9시부터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애완견이나 애완묘가 있는지 바닥에 달그락거리는 소리, 탁탁 치는 소리, 솔로 비비는 소리는 윗집인지 옆집인지, 대각선집인지 확실하지 않다. ‘쾅’ 거리는 문소리가 날 때면 그 문을 닫은 사람에게 가서 그 소리가 어느 정도로 다른 집에 울리는지 알려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진정 궁금해지곤 한다. 욕실에서 반신욕을 하고 있다 보면 위층의 물 내려가는 소리가 급경사진 강물 소리처럼 생생해 조만간 천장을 뚫고 흘러내리지 않을까 공포스러워진다.

벽을 내리치는 굉음은 몇 개월째 5-6회씩 총 3세트 정도 매일 울린다. 경비 아저씨는 주차타워에서 나는 소리라고 했지만,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1002호 사람이 일부러 벽을 치는 소리라고 한다. 902호에서 여러 번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1002호는 경찰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더니 어느 날 도끼로 902호 문을 찍어놓았단다. 그것은 54세대에게 알리는 1002호의 꺾이지 않는 소음 공작에 대한 의지였다.

아파트 대표가 나서서 단톡방을 개설했다. 단톡방에 며칠 늦게 합류한 나는 1002호가 우리 아파트의 빌런이 되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소음 때문에 반상회를 연다고 하길래 나는 지난 일요일 저녁 7시에 생전 처음으로 반상회라는 걸 가보았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은 몇 호에서 나는지 모르는 무차별적인 소음은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분위기를 보고, 또 기회를 봐서 내가 가장 거슬려하는 문이 ‘쾅’ 닫히는 소리를 조심해 달라고도 말할 용기가 있었다.

7시 3분에 문이 열린 경비실을 빼꼼 들여다보니 아래층 사내가 가장 먼저 보였다. 아래층은 신혼부부였는데 1년 전에 우리 집 초인종에 이런 쪽지를 붙여놓고 간 적이 있었다.

‘505호입니다. 오늘도 11:30분 뭐 시간대가 다양하게 아침 일찍부터 밤 새벽 시간대까지 소음이 나서 그러려니 넘어가려던 게 더 이상은 못 참겠네요. 저희 집 천장이 웅웅 거릴 정도로 진동 + 소음이 분 간격으로 납니다. 꾸준하게요. 무엇을 하시는진 모르겠지만 저녁 시간대는 좀 피해 줬으면 싶네요. 가만히 참고 괜찮아지겠거니 하니까 혹시나 그쪽에선 저희가 별말 없어서 괜찮겠다 싶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여 말씀드립니다. 배려해 주세요.’

이 쪽지는 아직도 작은 방문을 열면 닿는 벽에 아랫집의 강력한 테이프 접착제 덕분에 잘 붙어 있다.

나 역시 소음 때문에 괴로운 상황에서 아래층으로부터 오해를 받은 것이 억울했다. ‘나는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았고, 소음 때문에 나도 신경이 쓰이며, 소리가 심할 때 올라와서 확인을 해봤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취지의 쪽지를 아랫집 문에 붙였다. 혹시 쪽지를 보지 않아 여전히 소리의 진원지가 우리 집일 거라 단정 짓는 상황이 싫어 다음날 남편과 같이 아래층 문을 두드렸다. 애완견이 있으니 초인종을 누르지 말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내가 붙였던 쪽지는 없었지만 나와보는 사람도 없었다. 며칠 뒤 남편이 퇴근 후 주차하다가 화단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래층 남자를 발견했다. 아래층 남자는 부인이 그 쪽지를 쓸 때 같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집에서도 그런 소음이 다 난다고 하더라며 미안하다고 여러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고 한다.

반상회에 참가한 사람은 총 12명이었다. 주민 대표는 건설사가 설계 도면을 숨기고 있으며, 외벽 시공을 잘못해서 더 소음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전 대표가 건설사에게 몇천만 원을 받고 사람들한테 차후 하자 보수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아버려서 큰일이란다. 1002호는 여러 목격자 말을 종합해 보건대 사이코가 틀림없어 보였다. 서너 명이 1002호 앞에서 쿵쿵거리는 소리, 너무 세게 틀어놓은 음악 소리 등을 녹음해놓고 있었다. 문 닫히는 소리가 너무 심하게 나지 않냐고 내가 운을 띄우니 다들 문 닫는 소리, 샤워하는 소리, 소변보는 소리, 손님이 왔을 때 웃음소리 등등 생활 소리가 많이 난다고 한다.

나중에 층간 소음의 원인에 대해 유튜브를 찾아보니 1990년대부터 짓기 시작한 벽식 구조 때문이라고 한다. 벽식 구조는 기둥식보다 훨씬 싸게 지을 수 있다. 사무실 전용 건물은 기둥식이라서 층간 소음이 거의 없다. 아파트는 벽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위층이나 아래층에서 내는 소음 같아도 알고 보면 저 멀리 떨어진 집에서 나는 소리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입구가 다른 1002호의 벽치는 소리가 우리 집에서도 생생하게 들리고, 내가 느끼는 어떤 소음을 505호가 우리 집에서 내는 소리라고 오해하는 것이었다.

층간 소음에 대해 좀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니 내가 다른 집의 소음을 이렇게 쉽게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내는 소음이 다른 집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현관문을 닫을 때 손으로 받치지 않고 닫으면 우리 건물은 영락없이 100 데시벨 정도는 될 것 같은 ‘쾅’ 소리가 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화장실 문을 닫을 때 나는 소리가 다른 집에서는 매우 날카로운 ‘꽝’ 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집 변기는 호텔식으로 개조를 해서 물이 아주 세게 내려가는데 한밤중에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면 최소한 우리 집과 붙어 있는 세대에는 들리지 않을까 의심이 든다. 밤 10시에 퇴근하는 남편이 매일 돌리는 스타일러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아래층이나 옆 층에 전달이 되는 게 아닐까. 내가 수시로 바닥에 떨어뜨리는 핸드폰과 숟가락 소리는…….

이제까지 나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충분히 가해자이기도 했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로 연결된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55세대가 모두 한 집에 살고 있었다. 더군다나 층간소음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의 문제다. 그 전제를 깔고 집 생활과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 1002호처럼 일부러 내는 소음이 날 때는 슬기롭게 대처를 해야 한다. 재빨리 백팩에 노트북과 책 한 권을 넣고 스타벅스로 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 집은 스세권(스타벅스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는 개인 커피숍을 선호하지만 노트북과 책을 테이블에 꺼내 놓아야 할 때는 스타벅스를 애용한다. 강사, 전업주부, 재택 근무자 언저리에 카공족도 추가를 해야 할 것 같다.

keyword
이전 06화깍지는 여전히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