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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피에 Dec 24. 2021

할당죄

초단편

"가장 먼저 접시를 골라요. 김치 담글 때 쓰는 큰 대야 아시죠? 그만한 크기를 가진 접시에서부터 시작해서, 에스프레소 잔 만한 종지도 있었어요. 누가 그걸 죄를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겠어요. 눈앞에 온갖 산해진미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데요. 두말할 것 없이 다들 큰 접시를 들고 달려들기 시작했죠. 하지만 전 달랐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랄까요? 그래서 작은 초콜릿 한 조각 담아왔죠. 그런데 그것도 한입 베어 물고 다 먹지도 않았어요."


"계속 말씀하세요."


"그때, 이 공간의 관리자급으로 보이는 사람 하나가 눈에 띄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음식에 혈안이 되어있었는데, 흰 안광 하나가 빛나는 것을 봤어요. 그렇게 눈이 마주쳤죠. 그러자 그 사람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마치 지하철에 타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린 사람을 찾는 것처럼 뚜렷했죠. 그 사람은 '절대자' 같았어요. 가까이 다가온 그 사람이 내 작은 접시와 초콜릿 조각을 보고는 미소 지었죠. 그리고는 작은 선글라스 하나를 꺼내 건네었어요. 제가 물끄러미 고개를 들자, 안심하라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죠."


"이게 그 선글라스인가요?"


"네, 맞아요. 건네받은 선글라스를 써보니, 신기하게도 하나도 어둡지가 않은 거예요. 오히려 더 밝게 보이는 신기한 선글라스였어요. 한 가지가 이상하긴 했지만, "



"그게 뭐였죠?"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죄목과 형량 같은 게 쓰여있었어요. 예를 들어, 대머리 아저씨가 뜯던 칠면조 다리에는 '성추행 - 징역 3년', 패션 테러리스트 아주머니가 먹던 샌드위치에는 '아동학대치사 - 징역 12년' 이런 식으로 요."


"본인은요?"


"제 작고 작은 접시에 담긴 초콜릿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어요. '점유물 이탈 - 훈방'. 참 다행이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나는 중범죄는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지 같은 거구나, 그렇게 생각했죠.


"말씀 다하셨죠?"


"네.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지금 물건 주인께서는 선처 없다고 처벌해달라고 하시니까, 일단 서로 가셔야 될 거 같아요. 웬만하면 죄송하다고 하고 싹싹 비세요. 여기 CCTV에 찍힌 거 보이시죠.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세요. 저도 옆에서 최대한 설득해볼 테니까. 저기, 어머니 오시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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