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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피에 Sep 27. 2023

관상지구

초단편

"할머니, 왜 밖에 있는 어항에는 모래랑 집이랑 그런 거 안 넣어줘?"


웃옷이 흠뻑 젖은 소연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말자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말자는 수화기를 목에 끼우고 쭈그려 앉아 소연 얼굴에 묻은 물을 손으로 훔쳐 바닥에 털었다. 말자는 전화 너머로 들려올 박순경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 모를 청년과 그 옆에 쌓인 예닐곱 개의 스테인리스그릇을 보고 말자는 생각했다. 우리 태식이도 저래 잘 묵었을낀데.


[뭐라꼬예? 덩치가 산만한 놈이 백주대낮에 빨개벗고 가게로 기들어와예?]

"홀딱 벗은건 아이고, 수영 빤스같은거 하나만 걸치고 왔데. 해수욕장 앞인께네 그랄수도 있제."

[지금 우야고 있는데예?]

"아가 똑떼이 말도 몬하고 서만 있어가, 밥 좀 채리줬재. 언능와서 좀 우째 해봐라."

[그래예? 그라모 괜히 자극하지말고, 가만히 밥만 주고 계시소. 금방 갈게예.]


말자는 전화를 끊고, 의자 가죽시트에 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소연을 잡아 돌렸다.


"아이고야, 홈빡 젖어뿟네."


말자가 웃으며 소연의 웃옷을 잡고 양손으로 비틀자 바닥으로 물이 쫄쫄쫄 떨어졌다. 소연도 웃으며 자기 옷을 잡아 비틀다가 계산대 옆 작은 어항을 보고는 말했다.   


"저기는 저렇게 모래랑, 풀이랑, 집이랑 다 있고 밥도 계속계속 주잖아."

"소연아, 가게 안에 있는 놈들은 관상용이라꼬 우리가 볼라고 키우는기라. 이래 보모, 야들은 알록달록 예쁘고 보기좋은 놈들만 넣어놨다 아이가. 근데 밖에 있는 놈들은 볼라꼬 키우는기 아이다. 할무이가 장사할라꼬 넣어놓은기라 안예쁘고 무섭게 생깄다 아이가. 밖에놈이랑 안에놈은 서로 그 운맹이 다른기다."

"운맹? 운맹이 뭐야?"

"운맹이 운맹이지 뭐긴 뭐꼬, 니 할무이가 딱 장사 말아묵을 운맹이다."


팔봉이 회덮밥 하나를 더 들고 와서는 말자 앞 테이블에 탁 하고 던져놓았다. 말자가 바로 팔봉의 가슴팍을 찰싹 때렸다.


"아프다 할망구야."

"다 듣겄소, 와그리 못돼쳐뭇소?"    

"소연아, 할아부지는 언젠가 느그 할무이한테 맞아 죽을 운맹이다. 가자 소연아, 할배랑 탕수육 먹으러 가자."

"집에 먼저 들라가, 소연이 옷부터 갈아입히고 가시소."


팔봉이 대꾸 없이 소연을 들어 안고는 가게 문으로 걸어갔다. 말자의 눈치를 보던 팔봉이 참다못해 말했다.


"알았다, 알았다. 고마 옷 갈아입히고, 잘게 잘게 짤라가 맥이라 이 말 아이가."

"살살 불어가 식힌 다음에 맥이소."

"사장님은 남의 아나 잘 맥이소. 밥값도 몬받겠구마, 와그리 계속 갖다바치노."

"콱, 마."


말자가 가게 밖으로 따라 걸어 나가 팔봉 어깨위로 들린 소연에게 손을 흔들었다. 팔봉의 장난으로 소연이 들썩들썩 튀어 오르며 웃는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의 태식이 떠올랐다. 그 시절 팔봉은 훨씬 더 살집이 있었고 힘도 좋아서 태식을 매일 들고업었다. 더 이상 팔봉이 들기엔 벅찬 나이가 되었을 때쯤, 태식은 말자와 팔봉 곁을 떠났다. 그 후로 말자는 한 번도 태식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말자는 회덮밥을 청년 옆에 내려놓고는 청년의 맞은편에 살포시 앉았다. 조용히 먹던 청년이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말자를 바라보았다. 청년의 눈동자가 유난히 컸고, 먹물처럼 깊은 검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니 눈이 참말로 예쁘네. 어데서 왔노?"

"히굥히구..."

"히 뭐? 희룡지구? 쩌그 개발지구 말하는기가. 그마이 멀리서 와뿠나. 거서 만다꼬 여까지 왔는데? 거도 해수욕장 잘해놨다 아이가?"

"할출했다..."

"탈춤? 아, 탈출했따꼬? 와? 니 뭐 오데 잽혀있었나?"

"나항.. 혹하튼.. 힌구들... 아히또... 마니..."

"니 말고도 니 친구들 마니 잽혀있따꼬?"

"히굥히구... 너후... 스프다... 아후도... 모흐다..."

"니 근데 와 말을 똑바로 몬하노?"


청년이 밥을 꿀떡 삼키더니 입을 쩍 벌렸다. 매끈하고 불그죽죽한 잇몸만 보일뿐, 이빨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말자가 놀라 말했다.


"아이고마, 배락맞을 놈들. 이 젊은 아가 얼매나 힘들모 이빨이 몽창 빠져뿟드나. 가만보니 니 손톱도 하나도 없다아이가! 이기 다 무슨 일이고?"

"워래... 우히는... 이허케... 이험하히카..."

"살다 살다 내 이래 몬됀 놈들은 처음보내. 괘안타, 쫌만 기다리라. 순경 불러놨으니까네, 나쁜 놈들 다 잡아주고 니 친구들 구해줄끼다."


말자가 청년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청년이 흠칫하자, 말자는 '괘안타, 괘안타.'하며 계속 청년의 등을 쓸어내렸다. 청년은 천천히 다시 회덮밥을 먹기 시작했다.


"더 무꼬 싶으면 얼매든지 더 무라."


"할매요! 퍼뜩 나오시소!"

  

가게 문간에 박순경이 총을 겨누고 서있었다. 말자는 얼른 일어나 청년을 몸으로 가리고 손사래를 쳤다.


"아이다, 아이다. 야가 나쁜 놈이 아니고, 희룡지구에 나쁜 놈들이 있단다."

"할매요, 지금 희룡지구 앞바다랑 해수욕장에 사람 시체가 한둘이 아이랍니더. 목격자들 야그 들어본께네 딱 절마랑 인상착의가 맞아예. 지금 형사들이랑 특공대랑 다 오고 있다 아입니꺼. 위험하니께네 싸게 이리 오시소."

"아이다, 야는 피해자다. 아가, 말좀 해봐라. 니 탈출했다 안했드나, 니 친구들도 희룡지구에 잽혀있다켔지?"


청년이 일어나 말자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박순경이 놀라 사격자세를 고쳐 잡고 청년을 겨눴다.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 계산대로 향했다.


"마, 가만이쓰라 자슥아!"


청년은 아주 침착하게 어항을 들어 품에 안고는 말자를 바라보았다. 말자가 말했다.


"와? 그기 갖고 싶나? 내 그거 니 주께. 고마 조용히 순경 따라가가 조사 받는게 안낫겠나?"

"할매요! 저 자슥 저거 수영빤스 아입니더!"

"뭐라카노?"


말자가 유심히 청년의 수영복을 쳐다보았다. 눈이 잘 안 보여 이리저리 꿈뻑이는데, 청년이 입고 있던 것은 검은 수영복이 아니었다. 살색의 피부와 매끈하게 이어진 검은 피부 같은 것이었다.


"아가, 니 아랫도리에 문신한기가?"

"할매요! 떨어지시소, 절마 저거 생식기가 없다 아입니꺼!"



말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청년의 아랫도리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형태라도 있어야 할 그것이 없었다. 그제야 말자는 말을 잃고 청년에게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말자의 온몸에 식은땀이 쭉 하고 배어 나왔다. 어항을 들고 있던 청년은 말자에게 말했다.  


"환항히구"

"뭐...뭐라꼬?"


청년이 거침없이 가게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에 놀란 순경이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고, 엉겁결에 공포탄을 쏘아버렸다. 말자는 총소리에 놀라 뒤로 나자빠지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태식의 사건 소식을 들었을 때 이후로는 처음으로 가슴이 멎는 듯했다. 가슴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는데, 어느새 경찰의 사이렌이 무더기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가게 문 밖으로 나간 말자는 경찰차와 검은색 승합차들이 가게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무장을 한 경찰특공대와 형사들이 각자 가진 총으로 어항을 든 청년을 겨누고 있었다. 그 사이로 울상이 된 소연의 손을 잡고 있는 팔봉도 보였다.  


"어항 내려놓고, 양손 머리 위로 올려!"


경찰의 말에 말자가 청년을 바라보는데, 청년이 어항을 가게 앞 수조 위에 걸쳐놓고 미소를 지었다. 말자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데도, 청년의 미소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말자가 말했다.  


"니 와이라노, 착한 아 같은데 고마 빨리 손 올리라. 총으로 쏜다 안하나."


말자가 울먹이며 말하는데도, 청년은 계속 웃으며 수줍게 손짓하며 말자를 불렀다. 말자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맑은 청년의 표정에서 어렴풋한 태식의 얼굴을 보았다. 뭐 그리 대단한 걸 알려준다고 신이 나서 엄마를 부르는지, 뭐가 그렇게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었는지. 그랬던 태식이 너무도 그리웠다. 말자는 천천히 청년에게 걸어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런 말자의 행동에 청년도 웃었다.


"뭐고? 뭐가 그리 신나가 어린애 맹키로 웃어쌌는데?"


청년이 수조에서 커다란 우럭 한 마리를 꺼냈다. 경찰들이 순간 일제히 우럭에게 총을 겨눴다. 청년이 파닥거리는 우럭을 손에 들고 말자에게 보여주더니, 잇몸뿐인 입을 벌려 말했다.


"나."

"니? 이게, 니라꼬?"


말자와 청년이 연출하고 있는 알 수 없는 분위기에 경찰특공대와 형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총만 겨누고 있을 뿐이었다. 말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던 청년은 이번엔 수조 속의 다른 물고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힌구들"

"니 친구들이라꼬? 같이 노니 재밌드나?"


말자는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청년의 말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말자였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재밌게 듣고 다시 되물었던 시절이, 그런 시절을 함께한 아이가 있었다. 말자의 대거리에 한층 더 신이 난 청년은 수조 위에 올려둔 어항에 우럭을 넣어버렸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우럭이 어항에 있던 예쁜 물고기 몇 마리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말자가 인상을 쓰며 청년에게 말했다.


"아이고, 와 큰데 있던 니를 작은 어항에 넣어뿟노."


청년이 활짝 웃으며 입을 벌리는데, 그 순간 우럭처럼 뾰족한 이빨들이 쑥 하고 잇몸을 뚫고 나왔다. 말자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 소리에 놀란 경찰특공대 몇 명이 실수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말자는 총소리에 놀라 귀를 막고 엎드렸다.


"사격 중지! 중지!"


말자가 조심스레 고개를 드는데, 온 수조에 구멍이나 물이 세고 있었다. 그런데도 청년은 아무런 상처도 없이 어항을 몸으로 막고 있을 뿐이었다. 청년은 다시 말자에게 손짓했다. 말자는 놀란 가슴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이빨이 돋아난 청년이 어항을 가리키며 또박또박 말했다.


"관상지구."


말자는 청년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데, 청년은 다시 손으로 수조를 가리키며 말했다.


"식용지구."


청년은 물 빠진 수조 바닥에 있는 우럭 한두 마리를 꺼내 다시 어항에 풀어넣었다.


"친구들."


"으악!"


갑작스러운 비명소리와 함께 일제히 총구가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 청년과 외형이 비슷한 사람들이 동물처럼 이리저리 날뛰고 있었다. 총성과 비명이 아수라장을 이루는데, 청년이 말자에게 다가와 앉았다.


"탈출했다."


말자가 한참 동안 청년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청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어디서 왔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탈출했다니 잘된 일인 것 같았다.    


"잘 해뿟다. 인자 가서 친구들이랑 신나게 뛰 놀그라."


청년이 고개를 조아리더니, 말자의 손을 놓았다. 손톱이 없던 자리에서 갑자기 쑥 하고,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났다. 말자에게 미소 짓던 청년은 자신의 친구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경찰들의 총성이 탕탕탕탕 울려 퍼졌다. 그것이 청년의 탈출을 축하해 주는 팡파르 같다고, 태식이도 어딘가에 있다면 저렇게 자유롭게 뛰어 놀았으면 좋겠다고, 말자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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