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종로가 되는 게 아니고요 할아버지, 저희 HB 바이오텍 인공신체 디바이스를 이용하고 계시잖아요. 지금 사용하시는 디바이스의 무선통신방식이 8G거든요? 근데 작년에 우리나라 전체가 9G로 바뀌면서 현재 사용하고 계시는 디바이스랑 호환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1년 동안은 호환이 되게끔 따로 전환서비스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무턱대고 바꿀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런데 한 달 뒤에 공식적으로 서비스가 종료돼요. 그래서 교체를 하셔야 된다고 1년 전에 고지를 드렸는데, 지금 확인해 보니까 아직 교체를 전혀 안 하신 거 같아요."
"그니까, 1년 전에 종로로 바뀌었다고?"
"종로가 아니라 종료라니까요 할아버지. 지금 인공신체 사용하고 계시는 건 맞으시죠?"
"거기가 그거 하는데요?"
"네, HB 바이오텍인데요. 여기로 전화 거신 거잖아요?"
"내가 걸었다고?"
"[당신이 걸더구먼은 왜 딴소리하고 있어. 그리고 전화는 왼쪽으로 받으라니까.]"
"가만있어봐, 그렇지. 왼쪽으로. 그래, 여기 팔뚝에 갑자기 전화 걸으라고 화면이 떠가지고 내가 걸었지."
"옆에 혹시 자제분이나 손주분 안 계신가요?"
"없어. 마누라랑 나밖에."
"그럼 혹시, 좀 잘 아시는 분이랑 통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 도와주실 분 없으실까요? 지금 보니까 할머니께서는 가족 요금제로 안 묶여있는데요. 아마 타사 제품을 사용하고 계신가 봐요."
"몰라. 센터에서 해줬는데, 이제 관리사도 못 보내주고 고장 나도 못 고쳐준다고 하더라고."
"그러시구나. 그래도 저희 쪽에서는 고지의무가 있어서 말씀을 드려야 되는데. 잘 듣고 꼭 확인하셔야 돼요. 저희 제품 쓰시니까 자동으로 메모리에 녹음되거든요? 헷갈리시면 나중에 꼭 다시 확인해 보세요."
"응."
"지금 사용하고 계시는 디바이스가 총 6개로 나와있으신데요. 왼쪽 다리, 심장, 왼쪽 귀, 오른쪽 팔뚝, 위장, 간 이렇게 되어있으세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현재는 저희가 8G 통신 호환을 위해서 따로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어서 문제없이 디바이스 사용이 가능하신데요. 한 달 뒤에는 이 서비스 체계가 9G로만 단일 운영되면서 8G를 사용하는 이전 세대 디바이스들은 개통이 취소가 되실 거예요. 그렇게 된다고 해서 당장에 디바이스들이 작동을 멈춘다는 건 아닌데요. 그래도 관리서버랑 디바이스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지 못하다 보니까, 고객님 신체 컨디션에 기기가 호응을 못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 응급 시스템이 작동을 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해서 건강이 나빠지실 수도 있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그니까 이게 멈춰서 내가 병에 걸린다고?"
"아니요 할아버지. 당장에 멈춘다는 건 아니고요, 빠른 시일 안에 서비스센터나 매장을 방문하셔서 상담받아보시고 9G 디바이스로 교체하시면 아무런 문제 없이 계속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시다는 거죠. 원하시면 교체서비스 담당 기사를 보내드릴 수도 있어요."
"새 걸로 바꿔준다는 이야긴갑네."
"[잘됐네, 감사하다고 하셔.]"
"아니요, 고객님. 무상으로 교체해 드리는 건 아니고요. 저희가 새로 개정된 노화방지법에 따라서 40세 이하 노화 진행 전이신 분이나 노화 진행 1기에 해당하는 청년들에 한해서만 무상으로 교체를 해드리고 있고요. 40세에서 60세 즉 2기에 속하시는 장년층은 자기 부담금 50%, 60세 이상 고객님들은 자기 부담금 80% 수준에서 교체를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그니까, 나는 78살이니까 80프로 내 돈으로 해야 되나?"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게 규정이 바뀐 지 얼마 안 돼서 착각했네요. 70세 이상 고객님은 지원금이 안 나가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고객님의 경우에는 전액 자기 부담으로 하셔야 되세요."
"아니, 가만있어봐. 왜 나이 많은 사람한테 돈을 더 받는데."
"죄송합니다. 저희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정부가 노화방지법 개정으로 내린 지침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고객님."
"그래서 얼만데."
"기존에 이용하시던 6개 디바이스만 하실 경우, 883만 7250원에 교체가 가능하세요."
"800만 원? 우리가 그런 돈이 어딨어."
"그럼, 지금 꼭 전부 교체하실 필요는 없고요. 일단 가장 중요한 심장이랑, 위장, 간, 오른쪽 다리 먼저 하셔도 돼요. 왼쪽 귀랑 오른쪽 팔뚝은 당장에 급하시지 않으니까 괜찮으실 거 같은데. 그렇게 하시면 525만 원 정도로 교체 가능하세요."
"내가 지금 우리 마누라 누워있어서 병간호를 하고 있는데, 손이랑 귀를 빼면 어떻게 하라고."
"그러셨구나. 제가 상황을 잘 몰라서 일단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옵션을 말씀드린 건데요. 이거는 결국 고객님께서 선택하셔야 되는 문제라, 제가 어떻게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어떻게 해야 돼."
"[뭘 어떻게 해, 당신 그거 교체해야지 뭐.]"
"그러면은 이게, 우리 마누라도 그 교체를 해야 되는 거 아니요?"
"지금 할머니께서는 저희 회사 제품이 아니시라서 제가 어떻게 말씀을 못 드리겠는데요. 고객님이랑 비슷한 시기에 정부보조로 디바이스 이식하신 거 맞죠?"
"응."
"그러시면, 할머니도 8G 디바이스를 사용하고 계실 거예요. 마찬가지로 한 달 안에 서비스가 종료되어서, 교체를 하셔야 되는 상황이세요."
"그러면 지금, 둘이 합쳐서 돈 천만 원 든다는 거네."
"할머니 쓰고 계신 디바이스가 혹시 몇 개인지 알 수 있을까요?"
"8개인데, 뼈가 약해서 누워만 있거든. 근데 그 콩팥이랑 폐가 기계가 비싼 거라고 하더라고."
"그러셨구나. 맞아요 고객님. 그 디바이스는 특별히 좀 더 비싸서 아마 그 두 개가 700만 원가량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큰일 났네."
"[나라에서 안 해준다는 얘기요?]"
"법이 바뀌어서, 늙은 사람들 지원을 안 해준데."
"[당신만 교체하면 되지. 그 만치는 있잖소.]"
"당신은 어떡하고."
"[나야, 어차피 맨날 누워있는 사람인데 바꿔서 뭐 해. 놔두고, 당신이나 해.]"
"쓸데없는 소리."
"고객님 제가 한 설명이 이해가 잘 되셨을까요?"
"알아들었어."
"그러면, 교체서비스 예약을 잡아드려도 될까요?"
"아니야, 놔둬."
"그러시면, 제가 다음 주 중에 교체서비스 담당직원에게 전화 한번 드리게끔 전달할 테니까요,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시고 서비스 종료되기 전에 꼭 9G 디바이스로 잘 교체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응, 고생했네 자네도."
"새롭게 만나는 건강의 동반자, HB 바이오텍 상담원 김수진이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여보세요, HB 바이오텍 교체서비스 담당 직원 윤대홍입니다. 8G 기기 교체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어디시라고요?"
"바이오텍입니다. 서비스 종료가 얼마 안 남아서 몇 주 전부터 계속 연락을 드렸는데요."
"안 가셔도 될 거 같습니다."
"네? 그거 빨리 교체 안 하시면, 나이도 있으시고 해서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저는 여기 관할 경찰서 형사입니다. 어제 자택에서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발견되셨어요."
"네?"
"사망하셨어요. 연고자가 없어서 저희가 전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화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셨구나. 혹시 지금 시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영생병원 영안실에 있습니다. 거기서 회수하시고 확인서만 보내주시면 될 거 같아요. 할머니는 그쪽 고객이 아니죠?"
"네, 아닙니다. 그럼 저희는 수거팀 보내서 할아버지 디바이스 회수하고, 서류 보내겠습니다. 비용은 어떻게 받아야 할까요? 유가족이 없으시다고 해서."
"장례비용에 써달라고 놔두신 게 있어요. 처리하고 서류 보내주시면, 바로 송금해 드릴게요. 계좌번호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