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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in Jul 15. 2023

시간과 관심을 나에게 돌린다면

나는 왜 미디어와 문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가

미디어의 발달은 여가의 탄생에서 출발했다. 일터와 주거지의 먼 거리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교통수단이 상용화되며 노동과 쉼은 분리가 됐다. 이로써 시간은 소중한 자원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일을 하느냐가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고, 몇 시간 동안 휴식을 즐길 수 있느냐가 개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미디어는 일을 마친 뒤 지쳐있는 현대인에게 가성비 좋은 활동을 제공해 준다. 영상과 스마트기기가 일상과 가까워질수록 쉽고 편리한 서비스 이용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해당 미디어에 송출되는 콘텐츠가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심층적으로 논해야 하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 미디어 바깥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미디어 안에 있는 내용이 양질의 다리를 놓아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해봐야 하는 것이다.


미디어 바깥, 즉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사실은 미디어 안으로 들어올 때 편집되거나 특정한 틀에 맞춰 잘려나간다. 특정한 대상의 상징성이나 내재된 특징을 극대화할 때도 있고 축소시킬 수도 있다. 현대화된 도시 거리에도 범람하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또 다른 미디어로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진짜 현실이 무엇인지 쉽게 단정 짓기도 어려워졌다. 특히나 미디어를 광고 매체로 활용하고자 하는 여러 이익집단이 미디어 뒤에 서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지식과 개념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이때 겹겹이 쌓인 광고 속에 숨겨져 있거나 파편화된 진실을 잃지 않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사회를 윤택하게 만드는 하나의 길이다. 


미디어에 묘사된 화면 속 이야기와 실제 벌어지는 현장과 대조는 그 길로 걸어가고자 하는 결심이 될 수 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체험은 미디어를 통해 접한 내용과 늘 같지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소비하는 이용자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간 사건이나 장면을 사회 공동체가 모두 함께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또 다른 길을 상상하게 하고 더 나은 길을 모색할 때는 다양한 방법을 구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관점이 소중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와 있다. 어떤 좋은 소식을 소개할 것인지 선정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AI와 미디어 기술이 발전해 정보 수집이 용이해졌지만 관점이라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과 감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스마트폰이 생기기 전보다 많은 매체가 사용되고 범위는 확장됐으나 사람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관심의 사각지대는 점점 더 찾기 어려운 곳으로 밀려났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스펙터클하고 판타지 가득한 콘텐츠에 관심을 두는 만큼, 다양한 세상과 다른 사람의 삶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폭은 좁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면을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던 문자, 단어, 문장들에 집중할 만한 시간과 힘이 줄어들고 있다. 미디어는 증폭되고 광활해지고 있는 반면, 현대인의 한정된 시간은 그를 쫓아 기기 버거울 정도다. 여기서 실제로 도움이 되는 관점은 지쳐가는 정신의식 세계에 차분하게 분노하지 않으면서 미디어 바깥 세계와 상호작용을 시도하게 만든다.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함께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온전히 즐거워 문화에 대해 이야기에 가담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의 원형은 인문학을 전공하고 공부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만들어졌다. 인문학 전공을 선택하면서 왜 문학, 역사, 철학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야 했다. 고등학교 교육에서 가르치는 개념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접근해 보며 무엇이 좋은 관점이 될 수 있는지 충분하게 생각해 보고 정리한 후에야 지도자와 다른 동료 앞에서 발표할 수 있었다. 결국 자신의 세계를 계속 확장하고, 다른 사람의 세계로 넘어가 보고 왔다 갔다 교류하며 함께 관점을 쌓아 올리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들을 견디고 살아남은 유명한 학자들의 책과 이론들이 어깨를 무겁게 만들 때도 있지만, 스스로 관점을 꿰매기 위해 목차를 정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구성을 갖춰보려는 시도는 늘 의미가 있었다. 많고 많은 이론과 지식 중에 왜 하필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지 이유를 댈 수 있다면 그 뒤부터는 자유롭게 토론해 봐도 괜찮았다. 이때 감정, 태도, 사례를 설명하기 위한 스토리텔링, 논리적 사고 등을 활용하며 명확한 말과 문장을 사용하는 데 공을 들이는 법을 배웠다. 일종의 편집을 통해 미디어에 무엇을 보여줄지 결정하는 과정 중에 인문학에서 중요시하는 발제와 토론 문화가 포함이 돼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면 더 댜앙한 목소리를 담는 데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상과 주위에 벌어지는 복잡한 사회 현상에 대해 명확하고 합리적인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전문가이거나 좋은 관점으로 연구를 통해 쌓은 이론과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그마저도 없다면 스스로 책을 읽거나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며 깨달아 갈 수도 있다. 미술 작품으로 소통하는 전시팀 활동, 영화나 책을 보고 서로의 감상을 나눌 수 있는 모임, 문화예술에 대한 감상과 해석을 작성해 여러 매체에 기고해 본 경험은 느리지만 삶의 풍요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미지, 텍스트, 영상을 늘 접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상을 살면서도 긴 호흡으로 살아나갈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결정하고 생각해 보게 만드는 행동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서 직접 소통하는 것이었다. 


재미있고 좋은 것을 시청하거나 감상한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는 결국 스스로 정해야 한다. 혼자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문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고, 사람들과 만나 이해할 수 없었던 조각들을 함께 맞춰가는 것이다. 이 가운데 미디어는 적절하게 활용가치를 나타낸다. 직접 만나기 어려운 사람과 대상과의 거리를 좁혀주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주제를 적절한 형태로 제시하는 것 역시 미디어의 중요한 역할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좁힐 수도 있고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혼자서 고민하면 막막하거나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적절한 소통 방식을 취한다면 희망도 품을 수 있고, 또 다른 세상을 꿈꿔볼 수도 있다. 생각이 멈춰지고 분절되면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잊힌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조금씩 합쳐지면 생각보다 그 힘은 강해진다. 


한 번 그 경계를 넘어본 사람, 혹은 집단은 그 가능성을 믿을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된다. 작더라도, 참여한 인원이 소수더라도, 좋은 관점을 지속해도 된다는 확신을 가슴 밑바닥에 놓고 더 다양한 시도를 쌓아갈 수 있게 된다. 1회가 끝나더라도 2회로 돌아올 수 있고 여러 회차를 계속할 수 있다는 당연함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 포기보다는 가능성과 행복한 여행에 초점을 맞추고 나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연합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역사를 놓고 보더라도,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이 많이 있다. 자서전을 직접 써서 새로운 독자를 만나고 그들의 경험 또한 들어보는 경험은 기대하지 못한 축복이었다. 특정 고민을 나누기 적합한 영화로 토론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의 장을 맡았을 때는 건설적인 대안을 듣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특정 지역 이미지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실제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전시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는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나의 행동은 또 다른 시도와 실천에 영향을 미쳐 계속해서 확장된 활동을 하도록 이끌었다. 


미디어가 사람 위에 있는 이상, 사람들은 대면으로 교제하고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즐겁고 재미있는 미디어 영상 콘텐츠 소비는 쉽고 편리한 여가 활동에 그칠 수 있으나 미디어 바깥사람들과 즐길 수 있는 만남, 모임, 축제는 좋은 미디어뿐 아니라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언제라고 장담할 수는 없으나 길고 깊게 축적된 지역과 집단이 쌓아 올린 이야기는 계승될 수 있고, 위기가 닥쳤을 때 튼튼한 집이 되어 줄 수 있다. 미디어로 인해 안전한 공간이 어디인지, 소중했던 시간이 언제였는지 잊어버리는 지점까지 와 있다면 여가 시간 중에서라도 나, 혹은 개인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현실은 미디어 바깥에 있고, 직접 찾아서 가보면 미디어가 묘사한 것과 다르다는 것을 언제나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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