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가 중첩되며 진행된다. LA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어린 소녀 알렉산드리아는 어느 날 다리를 다쳐온 로이를 만나게 된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만남은 로이가 구두로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발전되고, 그렇게 알렉산드리아는 환상의 세계를 맛보게 된다. 물론 그 로이라는 작자가 감질나게 자꾸 재밌는 부분에서 이야기를 끊어버리긴 하지만 말이다.
로이가 전하는 환상적 모험의 이야기, 즉 액자 구조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영화의 이야기 속 '이야기'는 마냥 허구가 아니다. 비록 다 죽어가던 나무에서 정령이 튀어나오고, 또 코끼리를 타 바다를 건넜다는 등의 비현실적 전개들이 속출하지만 그 안엔 로이의 삶이 깃들어있었고 종국에는 알렉산드리아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거기에 덧대어나간다. 그러니까 이것은 세헤라자데 이야기인 동시에 누군가의 삶 궤적을 따라 그린 일종의 일기다.
영화 스턴트맨 출신인 로이는 몸과 사랑 모두를 잃고 병원에 입원해 지옥 같은 나날들을 맛본다. 죽고 싶어진 로이는 알렉산드리아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살살 꾀어내 자신의 자살에 동참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그 끝에 도사리고 있던 건 자신의 평화로운 죽음이 아닌 알렉산드리아의 큰 부상이었다. 관객 입장에서야 어른이면서 그것 하나 예상 못했냐며 무책임하다 로이를 책망할 수 있지만, 당시의 로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그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까진 없지만, 사실 때때로 인생과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가 닿을 수도 있는 거잖나.
바로 그 부분이 중요하다. 로이는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결말을 맞이한다. 자신 때문에 알렉산드리아는 다쳤고, 스스로 역시 죽음이란 선물을 받아내지 못했으니. 그 때문에 그는 알렉산드리아에게 전하던 환상 속 이야기를 서둘러 마무리 해내려 한다. 사랑하는 여자는 자신을 배신하고, 충직하던 동료들은 하나둘씩 허무하게 죽어나가며, 오디어스란 악인에 의해 주인공인 스스로 역시 죽음의 끝자락에 가 닿는다. 이 이야기에 권선징악은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선이라는 개념이 없었을지도.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간청에 로이는 자신이 써내려가던 결말을 바꿔낸다. 주인공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그녀의 말엔 꿈쩍도 하지 않던 로이지만, 이어 알렉산드리아가 이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말하자 마음을 고쳐 먹는다. 제발 죽이지 말아달라고, 제발 죽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부탁.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말하는 선언. 알렉산드리아의 그 부탁에 로이는 이야기를 바꿔내고, 그렇게 바꿔 씌어진 이야기는 로이를 우울과 자기연민이라는 죽음의 덫으로부터 구해낸다.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 그 말미에 여러 고전 무성 영화들을 소환해내며 기리는 것처럼, 영화 및 그외의 각종 이야기들은 때때로 우리의 삶을 구해낸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꼭 영화나 드라마 등의 예술 매체들을 굳이 갖다 대지 않아도 이미 우리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로써 충분히 제 구실을 하고 있다. '당신이란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란 구태의연한 표현까진 꺼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건 정말로 맞는 말이다. 하나의 삶, 하나의 이야기. 그리고 그 안의 당신이란 주인공. 게다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당신이란 영화의 주인공은 당신뿐일지언정 거기엔 분명 다른 조단역들도 존재할 것이다. 고로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주인공에겐 응당 책임이 주어진다. 그게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간에 그 결말 끝까지 달려나갈 책임. 어쩌면 조금 순진한 말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정말로 우리 모두가 그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신의 이야기를 써 나아가세요. 부디 스러지지 말고 결말 끝까지 당신의 이야기를 완성해나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