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정을 아울러 '희로애락'이라 한다.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이 중에서 누가 가장 힘이 셀까? 영화 '분노의 윤리학'에서 명록(조진웅)은 분노라고 답한다. 우리는 다른 감정을 느끼다가 돌연 화가 나곤 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기쁘다가도, 더 많이 번 사람을 보면 화가 나고. 기르던 강아지가 죽으면 슬프다가도, 그 강아지를 죽인 놈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다가도, 사장이 불친절하면 화가 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화가 난 상태에서는 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다. 다른 감정을 모두 잡아먹고 다른 감정으로 덮을 수 없는, 분노야말로 '감정의 왕'이라 할 수 있다는 거다.
화(火)라니, 얼마나 잘 지은 이름인지. 화는 불처럼 순식간에 메마른 나를 집어삼킨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내 주변으로 번진다. 그리고 전부 태운 후에야, 후회라는 재를 남긴다. 숨어있던 이성도 그제서야 뻘쭘하게 고개를 든다. 물론 불도 다 같은 불이 아니다. 숯불처럼 오래가는 불, 산불처럼 거대한 불, 실수로 붙은 불,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저지른 불. 이 불들의 공통점은 '고통을 고통으로 갚겠다'라는 위험한 생각이다. 그래서 가스불 조심하듯이 화를 잘 다스려야 한다.
2천 년 전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화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그 속에는 화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으로 가득하다. '화는 화를 낸 사람에게 반드시 되돌아온다.', '화를 내며 보내기엔 인생이 얼마나 짧은가.' '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은 유예다.' 그는 철학자답게 인간의 이성을 믿었다. 이성으로써 화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책 속에서 그 또한 화를 다스릴 수 없어 당황하는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감정은 항상 이성에 앞선다. 감정은 자극에 대한 반사적인 반응이고, 이성은 한 박자 늦게 그에 대처할 뿐이다. 백성이 어떻게 감히 왕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평소에 땔감을 줄이는 일이다. 내 마음속에서 불에 잘 타는 온갖 불만과 혐오를 치워야 한다. 마음이 약해져 쉽게 상처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스트레스 때문에 예민해져서 싸울 거리를 찾는 일도 멈춰야 한다. 그러면 불씨가 커지는 걸 막을 수 있다. 같은 일이라도 화가 잘 나지 않고, 화가 나더라도 금세 사그라든다. 물론 화를 무조건 참을 필요도 없고, 살다 보면 화를 내야 할 상황도 생긴다. 다만, 화가 날 때야말로 가장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 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타버린다면, 또 한 번 감정의 왕 앞에 무릎을 꿇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