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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May 17. 2022

잡초도 꽃을 피운다고요?

꽃이 피지 않는 식물은 없다. 누구나 꽃을 피울 수 있다

열매를 맺지 않는 식물은 있어도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은 없어!

<주말엔 숲으로>(마스다 미리) 중에서


우리  한뼘  왼편에 자리잡은 은행나무는  빌라 5 창문에 이르기까지 위로  뻗어있다.  키큰 나무에서 가을이면 떨어지는 수많은 은행열매와 은행잎들이 떨어진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을  같은 노오란 은행잎들을 치우고 바람불면 툭툭 쾅쾅 난타의 타악기처럼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은행열매들과 씨름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무의 태생과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은행나무는 , 수가 따로 있다는 것도, 우리집 정원 나무가 그루인 것도 처음 알았다 (1 정원을 가진 3 세대 중에 우리집 정원에만 엄청난 수의 은행이 떨어지는데 가을내내 지독한 냄새때문에 이웃 빌라들의 불평이 심하다).


식물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어느날 은행나무에도 꽃이 필까 하는 궁금함이 생겼다. 은행나무꽃? 한번도 들어본 적도 실제로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열매가 있으니...꽃이 있을터.   적이 없을까? 검색해보니 은행나무 꽃은 있었다! 암수 각각 꽃이 핀다. 그런데  못보았을까? 은행나무 꽃은 일반적인 꽃과는 형태와 색깔(잎과 같은 초록색), 크기(너무너무 작다) 달라서 사람 눈에 거의 띄지 않는다고 한다. 수그루의 꽃은 작은 포도나 오디모양이며 꽃가루가 바람을 통해 암그루로 전해져서 수정이 되어 열매를 맺는다. 알고보니 내가 은행나무 수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암그루에  역할을  하고   지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바닥에 떨어진 존재라는 것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4~5월에 유난히 이런 꽃가루들이 정원에 가득 떨어져있었는데 은행나무와 관련되었다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암그루에 달려있는 꽃술

예전에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의 책 <주말엔 숲으로, 두번째 이야기>에서 숲에 사는 하야카야가 도시에 사는 두 친구 마유미와 세스코가 열매맺는 나무들에게만 관심을 보이자 "열매를 맺지 않는 식물은 있어도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은 없다"라고 말한다. 독신으로 살면서 늦은 밤 혼자 마트에서 장을 보던 마유미는 혼자 아무 의미없이 타인과 연결되지 않은 채로 지낸다는 생각으로 잠시 침울해지다가, '모두 꽃을 피운다'는 하야카와의 말을 떠올리면서 다시 힘을 낸다.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잡초도 한결같이 꽃을 피운다는 말이 나에게도 마음에 쿵 하고 울림을 주었던 기억이 났다.



모든 식물이 꽃을 피운다고? 한번 이런 의문이 들자 정원에 있는 작은 들풀들도 모두 진짜 꽃을 피우는지 궁금해서 정원이나 길가의 풀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런데 진짜 크든작든 못생겼든 잘생겼든 식물들은 모두 꽃을 피웠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니! 그러니까 장미, 백합, 진달래, 다알리아 등등 우리가 이름을 익숙하게 이름을 알고 있는 식물은 그저 그 식물이 피운 꽃이 유달리 화려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사랑하고 기억할 뿐인 것이다. 

도저히 꽃을 피울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평범하고 여린 잡초들도 모두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 나에게도 용기를 준다.
물론 어떤 식물은 특징없는 소박하고 평범한 꽃을 피우고 또 언제 피었나싶게 빨리 꽃이 져버리기도 한다. 어떤 식물의 꽃은 추운 겨울에 피기도 하고 또 기이하고 기특하게 오래도록 꽃이 핀 채로 머물기도 하며 아름답고 향기도 좋다(우리집 정원의 '크리스마스 로즈'가 그렇다). 고사리류만 포자형태로 번식한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로즈

평범한 식물들이 피운 꽃들도 모두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중에서 우리집 정원에서 2년째  자라주고 있는 음지식물 '아주가' 꽃이 특히 아름답다. '현호색'이라는 풀의 꽃도 아주 작지만 앙증맞고  이쁘다. 작년에 심은 둥글레는 올해 이른 봄에 뭔가를 하얗게 매달고 있어서 보니까 꽃이다. 둥글레도 꽃을 피우는 구나. 우리 정원의 대표주자 음지식물 호스타의 꽃은  얼마나 기품있게 아름다운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마 장미나무를 심었는데 화려한 장미꽃이 피지 않았으면 나는 무척 실망했을  같다. 안타깝게도 우리집 정원은 햇빛이  들지 않는 음지정원이라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식물은 생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초보 가드너로서 그저 이런 악조건에서도  자란다는 식물들을 조심스레 심기만 하고 탈없이 그저  자라기만을 바랐을 , 꽃을 피우리라고  한번도 기대하지 않았었기에 더욱 놀랍고 사랑스럽다.


나는  과연 그동안 살아오면서 한번이라도 꽃을 피웠을까, 피웠다면 어떤 꽃이었을까? 아니면 지금 어떤 꽃인가를 피우고 있는 중일까? 혹은 이미 오래 전 꽃이 피었지만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정원의 이름모를 온갖 식물에 핀 다양한 꽃들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꽃을 피울 능력이 있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움과 향기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
오늘 나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호스타 꽃
둥글레꽃
현호색(?)종류인듯
뽀리뱅이 꽃
빈카 꽃
'아주가'의 꽃이 너무 이뻐 몇 개 꺾어 꽃병에 두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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