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경험으로 바라본 인도네시아 전통 치유사
인도네시아는 '두꾼(Dukun)'이라 불리는 전통 치유사가 있다. 한국의 무당과 비슷하지만, 그 역할은 훨씬 넓다. 두꾼은 약초와 전통의술을 사용해 질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운명을 점치고, 때로는 흑마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흔히 두꾼은 두 가지로 나뉜다.
백(白) 두꾼: 전통 의술과 약초를 이용해 사람들을 치료하고 돕는 치유사
흑(黑) 두꾼: 악한 의도로 주술을 사용해 남을 저주하거나 해를 끼치는 존재
인도네시아에서 두꾼은 신뢰와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미신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렸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설명하다 보니 한국 무당이랑 똑같은데?..)그리고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두꾼과 얽힌 경험이 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자카르타 회사 근처에 새로 구입한 땅 위에 집을 지으셨다. 모든 것이 새롭고 깨끗한 공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집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감돌았다. 종종 밤에 사람이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 들리곤 해서 "엄마야?"하고 나가보면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상한 형체도, 설명하기 어려운 섬뜩한 느낌도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오빠도 같은 경험을 했고, 기사와 가정부들 마저 "이 집에 무언가 있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병원에서도 이유를 찾지 못했고, 상태는 악화되었다. 집에 상주하는 의사가 매일 방문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고 매일매일이 고비라는 소리에 가족들은 모두 슬픔에 빠졌다.
그즈음, 아버지가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는 집안을 돌며 기도를 하고, 어떤 의식을 치렀다. 어린 나는 오빠와 함께 집 밖으로 나와 있어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바로 두꾼이었고, 그날 집에서 이루어진 것은 굿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우리가 집을 지은 부지가 아주 오래전 공동묘지였다는 것... 그때부터 나는 귀신의 존재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했고, ‘두꾼’이라는 무당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굿 이후 그 두꾼은 돌아가셨다. 집에 있는 악령들이 너무 쎄서가 이유라고 전해들었는데, 그 이후 우린 바로 자카르타의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어느 날 발리에서 타지도 못하는 오토바이를 연습한답시고 동네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다, 결국 탈이 났다. 오토바이에서 내릴 때 갑자기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쏠리면서 넘어가려는 찰나, 손목 힘으로 억지로 그 무게를 버티다 결국 왼쪽 손목을 삐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한 달이 지나도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파스를 붙이고 마사지를 받으며 버텼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 파스를 덕지덕지 붙인 내 모습을 본 뿌드리는 (*이전'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마을이 필요한 이유' 글 참고) 내 팔을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두꾼인데, 한번 가볼래?"
두꾼이라니, 처음엔 손사래를 쳤다. 무당이 굿을 한다고 손목이 나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뿌뜨리는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사람을 고치는 의학 두꾼이야. 앉은뱅이도 일어나게 만들었다니까?"
'의학 두꾼'이라니. 그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따라나섰다.
뿌뜨리는 오토바이에 나를 태워 Canggu에서 더 위로 올라가야 있는 Abianbase 쪽으로 길을 향했다. 우리는 현지분들이 모여사는 동네를 지나 어느 작은 전통가옥집에 도착했다.
역시나 이곳에도 귀여운 강아지들이 지내고 있었고, 마루에서는 북적북적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다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발리어로 우리를 맞이했다. (내가 쓰는 인니어는 서울말에 가깝고, 발리어는 제주도 사투리다. 발리인들끼리 발리어로 대화를 시작하면 나는 눈치껏 단어를 유추하며 뉘앙스를 읽긴 한다. 근데 일단 할아버지 인사를 못 알아들었음..)
Pak Nyoman(뇨만)은 발리에서 보기 드문 180 정도 되시는 큰 키에, 85세 연세에도 허리를 곧게 피고 걸으시며 아주 정정하셨다. 이빨이 모두 빠지신 상태셨는데, 잔뜩 긴장한 나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시며 농담을 던지신다.
"나는 태어난 지 6개월 됐어. 아직까지 이가 안나네. 허허허, 너는 몇 살이야?"
유쾌한 농담에 나는 웃었고, 긴장은 조금 풀렸다.
할아버지가 계신 곳은 발리의 전통 가옥이었다. 발리 사람들은 여러 세대의 대가족이 한 단지 내에 여러 개의 별채(방, 거실, 주방이 별도로 형성되어 있다.)나 파빌리온 형태로 생활하면서, 집 안에 작은 사원이나 제단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의 집에도 그런 전통적 구조가 남아 있었다. (나중에 별도로 발리전통 주택에 대해 자세히 올려볼 예정이다.)
할아버지는 진료를 위해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나를 안내했다. 벽에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과 함께, 정부에서 인증받은 전통 치료사 자격증이 걸려 있었다. 순간 '인간문화재 같은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더니, 나를 가만히 보며 말했다.
"건물이 많이 있나 봐?"
순간 당황했다. 실소유하고 있는 건물은 없지만, 나는 부동산 개발 기획자로서 늘 건물과 관련된 일을 한다. (되고 싶다 건물주)
“가진 건물은 없고, 마스터플랜 정도의, 부지가 큰 부동산 기획을 해요."라고 말하자, 그는 빙긋 웃으시며 이내 몸 이곳저곳을 만져주기 시작하셨다.
손이 닿는 곳마다 묘한 통증이 느껴졌고, 뼈를 만질 때마다 드르륵거리는 이상한 움직임이 전해졌다. (처음 느끼는 뼈들의 움직임이었다.) 그는 나의 몸 상태를 하나하나 짚어내며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내 손목을 세심하게 눌러보시더니 몇 가지 동작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아팠지만, 점점 통증이 가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지압을 하더니 말했다.
"자 이제 괜찮을 거야, 돌려봐."
나는 조심스럽게 손목을 돌려봤다. 조금 전까지 통증 때문에 움직이기 어려웠던 손목이 아무런 고통 없이 부드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두꾼이 단순한 미신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는다. 물론 현대 의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 변화였다.
이렇게 나는 또 발리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치유를 경험한다. 기계도 약도 아닌, 사람의 손길과 신뢰가 만들어 낸 변화. 할아버지가 손목을 어루만진 그 순간 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지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분명 그 순간 바로 나아졌음을 느꼈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한동안 손목 통증 없이 잘 지냈다. 그리고 가끔 문득 생각한다. 이걸 과학이라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두꾼이란 존재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자연스러운 치유의 방식'을 기억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의사가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는 현대 의학을 신뢰한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논리 너머에서 치유되는 순간도 존재한다는 걸, 나는 그날 발리의 작은 마을에서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게 내 손목은 나았다. 그리고 나는 또 한걸음, 이곳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이후로 나는 여러 번 다른 곳을 삐거나 몸이 아파 종종 할아버지를 방문했었다. 다정한 할아버지와 하는 농담 따먹기가 그리워서도 있고...... 그가 계속 정정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