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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Feb 14. 2024

이름이 두 개라면?

뜬금없는 상상

스무 살 생일이 지나면 이름을 하나 더 가질 권한이 생기면 어떨까. 사회로 나가면서 불리고픈 이름을 본인이 직접 만들어 등록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도 좋지만, 이름을 지을 때 이름이 불릴 당사자의 의견이나 취향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으니까.

부모님이 큰 고민 없이 지은 이름도 있을 테지만, 배 속에 아기가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 마지막 날까지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한 이름이라면 죄송한 마음이 있으니, 개명보다는 이름을 하나 더 갖는 것이다.

스무 살 이전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무렵엔 취향도 자주 바뀔뿐더러 성격까지도 바뀔 수 있는 시기니까 스무 살 이후가 좋을 것 같다. 스무 살 생일 이후부터 스물두 살 생일까지 2년 정도 등록 기간을 주면 넉넉할까? 예상치 못했던 혼돈도 있겠지만 덩달아 재미있는 일도 있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성인까지 곁에 있는 친구라면 짓궂은 장난을 예전 이름을 꺼내어 부른다든지.



아이가 다녔던 꿈틀리인생학교와 현재 다니고 있는 거꾸로캠퍼스(이후 거캠)는 모두 나이에 따른 호칭 없이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아이는 꿈틀리에서 불릴 이름을 정할 때 두 개 중에 망설이더니 그때 사용하지 않았던 별명을 현재 거캠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2023년을 시작할 무렵 나도 새로운 이름을 갖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 아이 학교에서만 아니라 우리 가족 안에서도 그리 불러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남편과 나도 불리고 싶은 이름을 만들어보았다. 거캠에서 하듯이 우리도 부르기 좋도록 두 글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름의 의미를 서로 나누어보았는데,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아이는 - "유랑" (학교에서 불리는 그대로)
1) 흐를 유, 물결 랑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삶을 생각하며
2) 뜻과 발음이 좋아서 선택

평소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은 - "방문"
1) 마음의 '방'으로 들어가는 질'문'을 궁리하면서 (놓을 방, 물을 문)
2)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을 방문(visit)하면서 질문을 한다는 의미
3) 나만의 '방'에서 달(moon)을 바라보는 사람

2022년과 다르게 덜 바쁘게 지내고 싶은 나는 - "안박"
1) 느슨하고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으로 선택한 두 글자 (편안할 안, 얇을 박: 가볍다는 의미의 적당한 한자음을 못 찾아서)
2) 브런치에서 쓰고 있는 필명인 툇마루처럼 안과 밖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고

이렇게 정하고 한 해 동안 꽤 자연스럽게 서로를 불렀던 것 같다. 가끔은 친한 지인들에게도 별명을 말하고 그들과도 지어보기도 하고. 내가 정한 의미로 이름 불린다는 것이 생각보다 꽤 괜찮구나 싶으면서, 그래서 호를 짓기도 했구나 싶었다.



안박으로 지내던 연말에 거캠에서 가족워크숍이 있었고 그날도 여느 행사 때와 같이 그 시간 동안 사용할 별명을 짓는 시간이 있었다. 오늘은 새로운 별명을 지어볼까 하다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세로 배우고 싶은 생각에 "무무"라고 지었다. 워크숍이 끝난 이후에도 즉흥적로 만들었던 별명의 의미와 소리가 좋아서 안박에서 무무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가족에게 올해부터는 나를 무무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아직 남편도 아이도 새로운 별명에 어색해하지만, 아마도 별명은 오래 갖고 있을 같다. 무엇에든 무무의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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