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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Mar 07. 2024

불안하지 않은 엄마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만큼은 불안하지 않다는 말이다.

한 달 전 아이가 올해 4월에 있는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겠다고 말한 이후로 공부가 잘 되어가고 있는지 엿보고 싶은 마음 그 정도다. 주중에는 현재 재학 중인 거꾸로캠퍼스(이후 거캠)의 팀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주말 시간을 이용해야 하는데 4월 시험이 가능할까 싶은 그 정도. 약간의 걱정은 있지만 이 상황이 나의 불안함을 키우지는 못한다. 검정고시 한 번으로 어찌 될 만큼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좀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불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아니, 사실 나는 걱정도 많고 불안도 남 못지않은 편이다. 홈스쿨을 선택한 이후에도 불안하다가 불안하지 않다가 하는 변덕이 요동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믿는 구석이 생겨서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만한 금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거나, 아이의 평생을 책임질 키다리 아저씨가 등장했다거나, 알고 보니 아이에게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거나... 그 어떤 일도 꿈꿔 본 적도 없고, 영화가 아닌 이상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아주 느리게 불안이 잠재워진 것 같다. "학교에 대한" 다른 생각이 생기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 생각을 나누면서, 2년 간의 홈스쿨을 선택하고 부대끼면서, 홈스쿨을 마무리하고 다음 스텝을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기를 반복하면서,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느린 속도로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불안이 비워진 자리에 자신을 삶을 만들어갈 아이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 같다. 불안과 믿음은 동시에 사라지고 자라났던 것이다. 이렇게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1-2년 전쯤이었다.


아이의 대학 진학에 대한 생각을 접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남편은 홈스쿨 시작 무렵부터 아예 마음이 확정되어 있었지만, 내겐 대학을 내려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일로 남편과 크게 다투기도 했고, 서로의 생각이 좁혀지지 않아 힘들었던 시간도 있다. 엎치락뒤치락 긴 시간에 걸쳐 결국은 대학보다는 현재의 행복에 더 가치를 두는 것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아이가 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말리지는 말자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입학 시기에 있어서도 유연함을 갖기로 했다.


작년 하반기 즈음 아이는 처음으로 대학에 가서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고, 우리는 천천히 생각해 보자 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그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어 물었다. 

"공부해보고 싶은 전공은 생겼어?"

"철학이나 역사 이런 쪽에 조금 더 관심이 커지긴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대학에는 그 과가 없대."

"아, 어쩌냐..."

"근데 괜찮아. 나 사실 뭐라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와우, 정말?!"

"그래서 대학을 먼저 정할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그것도 좋지만,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현재 고2 나이) 과를 찾는데 좀 더 시간을 들여보는 게 엄마는 좋을 것 같은데."

"오케이!"


이제 준비해서 어느 세월에 어느 대학에 갈까 하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또한 내게 불안을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아이는 배움의 재미를 잃지 않고 있었고, 그것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자체로 고마운 대화였다. 




외동아이의 육아와 동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외동이 낫다느니, 홈스쿨에 대한 글을 쓰면서 홈스쿨을 하라느니, 대안학교를 보내야 한다느니, 책 육아를 반드시 해야 하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느니... 행여 나의 경험이 강요로 표현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썼다. 정답을 말하는 글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럼에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면 용서하시길. 사회는 과도하게 불안을 부추기지만 다수의 선택을 외면해도 괜찮다고, 각자가 가치를 두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도 괜찮다고 쓰고 싶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아이들을 만나는 순간은 나에게 특별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같은 공간에 머물러 아이들과 눈을 맞출 기회가 있다는 것이 즐겁다. 유모차에 탄 아이에게도 아빠에게 안긴 아이에게도 할머니 손을 잡고 서 있는 아이에게도 눈으로 말할 수 있는 순간이다. '아줌마는 너희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라.' 눈으로 웃으며 마음이 전하는 기회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 "외동아이와 홈뒹굴링" 브런치북을 서너 권 두고 내리는 기분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누구라도 집어가시길. 단 한 문장이라도 도움이 되길.

그래서 나의 이런 진심에도 조금 더 힘이 실리길.



(지금까지 연재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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