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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Sep 16. 2021

집안일도 함께

각자 팀 멤버로 서기

아이가 어릴 때 육아서나 부모교육서에 관심이 많았다. 한 권 한 권 읽어가면서 욕심내지 않고 ‘이 책 속에서 단 한 줄만 가져가자’를 목표로 했고, 그 덕에 책과 현실의 차이에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내용 한 줄만 가져가되 비교하지 않았으니까. 사실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 무렵 우리 가족의 가치관에 맞는 강사에 한해 부모교육 강의도 적지 않게 들었는데 그중에, 유독 선명하게 ‘단 한 줄’을 남겨 준 강의가 있었다. 진로와 소명연구소의 정은진 소장의 강의였다.

가족은 한 팀이고 부부와 아이들은 팀의 멤버이므로, “우리 팀”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서로 북돋우며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내 머릿속에 저장된 그 단 한 줄 아니 한 마디는, 가족에 대한 새로운 정의 “팀(team)”이었다.

특별히 이 한 마디는 아주 선명하게 새겨져서 홈스쿨 하는 동안도 자주 떠올랐다. 일상에서 아이와 어렵지 않게 팀워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집안일이다. 집안일은 아이의 성별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평소에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아이가 우리 팀에서 맡고 있는 부분을 정리해보자면,     

_아침 식사 설거지: 아침은 가장 적은 분량이 나오는 끼니다.

_아침 식사 준비 시 빵 굽기 및 가끔 사과 깎기: 아직 서툴지만 점점 실력이 좋아지는 중.

_주말 아침 식사 준비: 엄마 없이 아빠와 둘이서 준비.

_자기 속옷과 양말 세탁: 세탁부터 제자리 찾아 넣기까지 전 과정.

_장을 본 후 무거운 짐 나눠 들고 올라오기: 같이 장을 보러 가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주차장에서 만나서 들고 오기만 하고 있다. 가족 모두를 위한 장보기에 부분적으로라도 함께 감당하자는 의미.    

 

미리 약속된 것은 이 정도이지만, 이 일들에 익숙해진 후로는 ‘집안일은 엄마 몫’이라는 개념에서 점점 '누구든 하는 것'으로 변해가는 것이 보인다.


현실적으로 입시 위주로 자라는 아이들에게 "팀 멤버"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학교, 학원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고 오는 아이에게 팀 안에서의 할 일을 하게 하는 것보다 좀 더 쉬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일 것 같다.

부모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쟤가 뭘 할 줄 안다고~”라는 말을 어렵잖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보다 잘 해낸다. 처음이라 서툴 뿐이다. 그 서툴고 느린 것을 “못한다”라고 해석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처음 아이가 사과를 깎겠노라고 했을 때 예상했던 그대로 엄청난 과육이 잘려나가고 손을 베일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다음 날 아침에도 과도를 맡겼다. 

하는 아이도 서툴고 맡기는 부모도 서툴다. 서로에게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집안일은 하찮은 일로 여겨져 안타깝지만,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기본이 되는 일이다. 아이가 집안일을 배워가는 시간은 결코 하찮지 않다. 깨끗해진 자신의 양말을 널고 개면서, 서로의 수고를 덜어줄 수 있음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작은 책임감이 쌓여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림: <우리 엄마> 앤서니 브라운,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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