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질문, 몰랐던 대답
10년 가까이 잘 신어온 샌들 뒤꿈치 가죽이 많이 벗겨져 새로 하나 구입해야지 하는 차였다. 장 보러 가는 길에 남편과 들른 신발 가게에 마침 마음에 드는 샌들이 있어 구입하기로 하고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노부부가 그곳으로 들어왔다. 계산하고 나오는 길이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찰칵하고 찍은 듯 두 분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히 보인다.
다른 나들이가 있으셨던 건지, 그곳에 오기 위해서였던 건지 두 분 모두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단정하지만 시원해 보이는 여름 모자를 쓰고, 무늬가 있지만 그리 화려하지 않은 옷을 입고 계셨다. 그리고는 두 손을 꼭 잡고 입구 쪽에 있는 여성 신발 한 켤레에 두 분이 시선을 맞춰 다가가고 계셨다. 요즘은 손잡은 노부부의 모습을 보는 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잠시 스친 두 분에게서는 잔잔하지만 즐거운 무드가 흘렀다. 노래를 흥얼거리신 것도 아니고, 특별한 몸동작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즐거움이 느껴졌다. 문득 그런 무드를 가진 두 분의 대화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우리가 노부부가 되었을 땐 어떤 대화, 어떤 질문을 할지, 그때도 질문이 남아있을지 궁금해졌다.
(*남편은 훈, 아내는 화로 표기합니다. 실제 대화를 녹음해서 정리했습니다.)
아내 질문
훈: 응? 이미 얘기한 적 있는 것 같은데? 난 봄.
화: 듣고 보니 알고 있었던 것 같네. (웃음) 근데 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이유는 무엇임?
훈: 봄은 꽃이 펴서 좋지.
화: 진짜? 자기가 꽃 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이건 정말 모르는 사실이었음!
훈: 꽃은 새로움의 상징 같더라고. 새로움, 시작, 출발 이런 거.
겨울을 지난 다음이잖아. 겨울에 잘 견딘 것에 대한 어떤 보상 같다는 생각도 들고.
화: 그러네.
훈: 생물학적으로 보면은 어쨌든 꽃이 펴야 이게 더 그다음 단계로 가는 거잖아. 꽃이 펴야 열매가 되는 그런 준비하는 과정인 것도 좋더라고. 그리고 점점 따뜻해지는 계절인 것도 좋고.
화: 그러면 그 대답에서 질문이 하나 더 생각났는데, 그러면 자기는 어느 계절쯤에 와 있는 거 같아?
훈: 음.. 일단 여름은 지난 것 같고.
화: 그래? 백세시대로 봤을 때는 아직 여름일 수도 있지 않아?
훈: 아니야, 적어도 여름의 절정은 지난 거 같아. 가을 쯤이지 않을까.
그럼 자기는 어느 계절이야?
화: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인데 내 인생은 아직 여름인 거 같아.
훈: 아직 뜨거우시구먼.
화: 응. 아직 내 길을 찾아가는 중이고 이제야 진짜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걸 시작하고 있잖아. 그런 걸로 봤을 때는 나는 이제 여름인 것 같아. 이 여름이 후딱 끝나버릴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이미 여름 막바지일 수도 있지만 뭐 상관없어. 책을 내고, 사람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하는 게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이라고만 생각했거든. '진짜 언젠가 정말 해보고 싶다'라는 아주 허황된 꿈같은 거였지, 사실은. 예를 들면 누군가는 '나는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그런 느낌처럼. 그런데 그걸 실제로 한 번 했다는 거잖아. 그래서 아직은 여름이 아닌가 하는 거지.
훈: 그렇네, 여름이네.
화: 응, 근데 나는 계절로는 여름을 좋아하진 않는다는 사실. (웃음) 근데 나는 가을 중에서도 11월이 제일 좋은 것 같아. 10월 보다 겨울에 좀 가까운 가을. 그때가 좀 더 상쾌한 느낌이기도 하고 난 원래는 겨울을 제일 좋아했었는데 이제 나이가 드니까 겨울은 너무 힘들어서 그나마 약간 찬바람이 느껴지는 11월이 제일 좋은 것 같아. 현실적으로 모기도 그때쯤이 되어야 제대로 사라지기도 하고.
훈: 그렇지, 자기는 벌레 엄청 싫어하니까.
화: 또 그때쯤 되면 옷이 약간 도톰해지기도 하잖아. 그것도 좋아.
훈: 그러고 보니까 일반적인 경우에 여성들이 봄을 좋아하고 남성들이 가을이 좋아한다고 하잖아. 우리는 반대네.
화: 그러네. 근데 자기가 봄을 좋아하는 이유가 꽃 때문이라는 것은 진짜진짜 새롭다.
훈: (웃음)
흔한 질문 속에 몰랐던 대답이 숨어있다는 걸 안 이상, 새롭고 참신한 질문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앞으로는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인지, 인생 영화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묻고 그 속에 담긴 이유들을 들어봐야겠다.
질문 부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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