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다닐 학교를 정하기에 앞서 사전에 방문하고 설명을 듣고 질문을 하고 난 뒤 결정을 한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런 의미에서 아이에게 역사적인 날일 텐데, 사실 아이보다 내가 이 날을 기다렸고 더 설렜고 더 흥분되었다.
10월 중순 "꿈틀리 인생학교" 온라인 설명회 공지가 뜬 후, 설명회와 사전 방문 신청을 해두었다. 그리고 11월 첫 토요일에 온라인 설명회(학생들이 사전 녹화해서 만든 영상)를 보고, 둘째 토요일엔 강화도에 있는 학교에 직접 방문하여 학교 소개를 받았다.
시골길을 지나 만난 학교는 폐교를 활용한 공간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온라인으로 봤던 것보다 좀 더 낡아 있어서 첫인상은 그리 좋진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현대적이고 세련된 공간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그건 또 꿈틀리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운동장 한편에 주차를 하고 우리 가족이 차에서 내리는데, 타이밍에 맞춰 우르르 달려 나오는 환영 인파(?)의 표정이란! 우중충했던 학교 분위기를 단숨에 녹일만한 생기였다.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연둣빛 생기.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이루어진 멤버들과 함께 학교를 둘러보며 설명을 듣고, 선생님 세 분을 만나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대화를 한참 하고 나서는데 벌써 친근해진 느낌이 들고 말았다. 그곳의 사람들을 만난 이후로는 그 공간의 낡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가 다닐 학교를 정하는 데 있어 공간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구나 싶었다.
손님이 온다고 특별히 장식하지 않은 환경, 특별히 단장하지 않은 선생님들의 후드티. 이런 솔직함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그곳에 아이를 맡겨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15년 평생(!) 나름 쾌적한 환경에서 혼자만의 방을 갖고 지낸 아이가 폐교를 활용한 공동생활에 거부감 없이, 선뜻 마음을 확정했다는 말에 신기하기도 했다.
2022년의 삼백 육십 오일 하루하루, 이곳에서 아이가 만날 사람과 하루가 아이에게, 남편과 나에게 어떤 배움을 줄지 또 다른 기대감을 가진다.
“꿈틀리 인생학교”로 정하기까지.
중졸 검정고시 다음 스텝을 어떻게 할까 여러 가지 진로를 생각해왔다. 코로나로 인해 검정고시를 1년 빨리 보게 된 건 우리의 애초 계획과는 달라진 스케줄이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아이는 1년 간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처음엔 홈스쿨을 다시 이어갈지, 고등학교에 진학할지를 놓고 이야기했다. 그러다 홈스쿨이 가진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있는 1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게 되었고, 올해 초부터 관심 있게 봐온 “꿈틀리 인생학교”에 연락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의 고등 과정은 다시 1년이 지난 후에 고민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우리가 결정한 “꿈틀리 인생학교” 외에도 관심을 갖고 알아보았던 두 개의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처음에 알아보고 설명회까지 갔던 곳은 청소년 갭이어 “꽃다운 친구들”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사이 아이들에게 1년 간의 방학을 주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처음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았던 때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홈스쿨을 하기로 확정한 때가 아니었기에, 우리 부부는 아이의 중학교 진학을 가정해 보았고, 쉬어가는 한 해를 가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동일한 결론을 내어놓았다. 그렇다면 미리 알아두자는 마음으로 곧바로 그 해 가을에 있었던 설명회에 다녀와 그 내용들을 잘 담아두었다. 그리고 올해 그 내용들을 꺼내어 보니, 자기 시간을 충분히 누리며 지낸 홈스쿨러보다는 열심히 3년 동안 중학교 생활을 해온 친구들에게 잘 맞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는 결론에 아쉽지만 접게 되었다.
두 번째로 알아본 곳은 “오디세이 학교”였다.
이곳에 대해서는 여러 루트를 통해 들으며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마침 다니고 있는 지인의 아이로부터 만족도가 높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기대감이 커지던 중이었다. 그러다 홈스쿨을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전화 문의를 했더니, (우리에겐 아직 미정인) 고등학교 진학이 전제 조건으로 되어있어 마음을 접어야 했다.
세 번째로 알아본 곳이 “꿈틀리 인생학교”.
이곳은 다른 두 곳과 다르게 1년간 기숙 형태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올해 초, 이곳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기숙학교”라는 것만으로 겁 많은 엄마는 이곳을 아예 배제해두고 있었다. 세상에 흉흉한 소식들을 들으며 “기숙”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 있었다.
하지만 홈스쿨을 첫 해가 지나고 2년이 채워져 가면서 아이가 단단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덩달아 단단해진 덕에 걱정보단 아이에 대한 믿음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아이가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1년을 보내는 것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여전히 보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처음 아이에게 꿈틀리를 소개하며 꿈틀리를 다니고 있는 한 학생에 대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아이는 처음부터 적극적인 호기심을 보였고, 영상을 더 찾아보면서 이미 그곳으로 마음이 기우는 듯 보였다. 사실 처음부터 적극적인 모습에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해방을 외치고 싶은 건가 싶기도 했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이렇게 시작되어 하루하루 꿈틀리에 대한 마음을 키워온 터라, 학교를 직접 방문했을 때 낯섦은 잠시, 금세 편안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개인 공간이 부족하다는 단점도 알게 되었지만, 아이도 우리도 아직은 단꿈 속에 12월 접수일을 기다린다.
그리고,
2년간 홈스쿨 도우미로, 옆자리 짝꿍으로, 엄마로 보낸 시간을 잠시 접고, 온전히 ‘나’로 지낼 시간을 진지하게 그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