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도, 아니 갈 수도 있는 고등학교 배정
고등학교 배정통지서를 받고
오전에 서부교육지원청엘 다녀왔다. 지난 12월에 썼던 후기고 입학지원서의 배정통지서를 받아와야 하는 날이 오늘과 내일 이틀 간이었다. 일반적으로 중학교에 다니다가 고등학교로 지원하는 아이들은 아마도 학교를 통해 전달이 되는 것 같았다. 교육청을 찾는 발길이 뜸했던 걸로 봐서는.
오늘 아침 배정된 고등학교를 문자로 통보를 받고서는, 굳이 그 서류를 받으러 교육청엘 가고 다시 그 서류를 전달하러 해당 고등학교에 직접 가야 한다는 것이, 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한참 동떨어지게 느껴졌다.
다행히 배정 결과는 아이의 희망사항을 담아 1 지망 칸에 적었던, 집에서 가깝고 여자고등학교인 곳으로 결정이 되었다. 배정 결과가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본인과 인연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그런지 아이는 "솔직히 별 생각이 없네"라고 감흥을 알려주는데, 추운 날 왕복 두 시간에 걸쳐 다녀온 엄마는 그 리액션에서 또 본전 생각이 났다. 역시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고생해주는 쿨한 엄마는 결코 될 수 없는 걸로.
고등학교 배정을 받는 것이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이렇듯 감흥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 배정 결과를 대학 합격 발표만큼 떨며 기다리는 가족도 보았고,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대부분 어느 정도 기대와 긴장으로 기다리는 것 같았다.
거기에 비해 아이뿐 아니라 우리 부부도 크게 감흥이 없는 이 모습은 너무 밋밋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곧장 배정받은 학교에 가게 되는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달랐을까를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학교에 가고 싶은지 (또는 가면 좋을지)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지원서를 쓰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는 시간과, 이젠 손을 떠난 그 지원서가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기다리는 그 기간. 그리고 발표일 오전 10시를 기다리며 쿵쾅거렸을 그 마음. 환호와 함께든 실망과 함께든 그 배정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
아이가 유치원엘 들어가고 초등학교, 중학교엘 들어가던 그때와는 다르게, 고등학교 입학은 본인의 바람과 기대를 실은 만큼 그 결과가 묵직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어느 과자를 살지, 좀 더 잘지 지금 깰지에 대한 가벼운 선택의 연속이 있었다면, 어느 고등학교에 가고 싶은지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연습해가는 떨리는 첫 단추일지도 모르겠다.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와, 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점점 더 같은 각도에 놓고 바라보게 된다. 어떤 길을 가든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기에 우리가 가는 이 길을 주장하지 않으려 하고, 그간 어설프게 주장한 적은 없는지 돌이켜 보기도 한다. 주장하지 않으려니 다른 길을 가는 아이들을 자주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만 어떤 길 위에 있는 아이든 '선택'에 있어 무겁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선택에 대한 결과는 어른들도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을. 설레는 선택을 해도 된다고, 우리는 여전히 너희의 쿠션이 되어주고 싶다고,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커서 뭐가 될지 '아직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더라도, 내일을 생각하며 신나는 일 한 가지쯤은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