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익!' 프라이팬에 뭔가 볶이는 소리. 온 방안에 퍼지는 고소한 냄새. 운동회나 소풍날이다. 방 안 한 편엔 놓인 도마 위엔 김밥이 탑처럼 쌓였다. 엄마가 김밥에 참기름을 바르고 깨소금을 뿌릴 때쯤, 누나와 형, 나는 도마 주변으로 다가갔다. 가장 먼저 잘린 김밥 꽁다리를 먹으려고. 가장 먼저 집어드는 사람이 꽁다리를 차지했지만 우린 다투지 않았다. 절로 웃음이 나고, 설레는 특별한 날이었니까.
엄마표 김밥은 세상에서 가장 컸다. 몇 개만 집어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아침 일찍 김밥을 많이 먹고 가도 점심시간이 기대되었다. 운동회 날 점심시간엔 엄마가 찾아왔다. 운동장 한편에 있는 나무그늘. 돗자리 위에 놓인 김밥이 너무 맛나서 급하게 먹었다.
"그렇게 맛있어? 천천히 물 마시며 먹어"
나를 바라보며 말하던 엄마의 흐뭇한 얼굴이 아직 또렷하다.
소풍날 점심시간.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뚜껑을 열 땐 세상 모든 엄마들의 김밥이 모인 것 같았다. 소고기김밥, 참치 김밥, 작고 예쁘게 생긴 김밥, 밥보다 재료가 더 많이 든 김밥.
"햇살아, 니 김밥정말 맛있어. 커다래서 그런가?"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난 재료가 부족해도, 모양이 투박해도 우리 엄마 김밥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인 것 같아 깔깔대며 웃었다.
먹어도 먹고 싶은 엄마 김밥 먹던 날. 그런 날 보다엄마가 없는 운동회가 더 많았다. 작년과 똑같은 운동회인데 뭔가 달랐다. 점심시간 직전에 하던 박 터트리기. 박이 터지면 보이던 '즐거운 점심 시간 되세요'라는 문구가 싫어졌다. 나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떡볶이 한 접시 사 먹거나, 누나가 싸 준 도시락을 교실에서 혼자 먹었다. 커다란 엄마 김밥을 먹은 것도 아닌데 계속 물을 마셨다. 자꾸 목울대가 아려서.
소풍날의 풍경도 달라졌다. 나는 아침 일찍 시장에 가서 김밥을 샀다. 일회용 플라스틱에 담기고, 겉은 신문지로 싼 다음 고무줄이 묵인 김밥. 점심시간이 되면 김밥을 꺼내기 싫었다. 도시락통이 아닌 일회용 플라스틱 통을 꺼내면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며 말하는 것 같았다.
'너희 엄마는 김밥도 안 싸 줘?'라고.
운동회나 소풍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날이니까 특별한 줄 알았다. 엄마가 없으니 바뀌었다.평범한 날, 아니 가장 싫은 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