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처럼 Oct 20. 2024

아토피


# 기억의 조각


"삼촌, 같이 놉시다."

실컷 놀았는데도 더 놀자고 조르던 꼬맹이 조카들. 힘에 부쳐 '그만 놀자' 말하면 금방 실망하는 얼굴. 어린아이의 흐린 얼굴을 마주하면 엄마의 공백으로 풀 죽어 있던 내 옛 모습이 둥실 떠 오른다. 마음이 편치 않아 '조금 더 놀자' 말하면 그늘진 얼굴이 다시 반짝반짝. 조카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힘든 마음 사라지고 내 얼굴도 방긋해졌다.   


"삼촌은 좋은 사람 같아"

아장아장 걷던 아기였는데 이젠 대나무같이 쑥쑥 커버린 조카들. 신나게 놀던 기억들 때문일까. 나를 보면 자꾸 '좋은 사람'이라 말한다. 좋은 사람. 나는 따뜻한 감정을 품은 사람처럼 불리는 게 낯설다. 기쁨을 채우는 일보다 슬픔을 비워내는 일이 더 많았던 탓이다. 어쨌든 뿌듯하다. 조카들에게 뭔가 미소 지을 수 있는 추억을 선물한 것 같아서.


"햇살씨는 정이 많은 사람이야."

 직장에서 잠깐동안 같이 일했던 도우미 아주머니. 잠시 스치는 관계라는 타인들의 차가운 시선에 한기를 느낄 것 같아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자주 건넸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내게 말했다. 정이 많은 사람 같다고. 역시 생경하게 들린다. 엄마의 정을 그리워하며 살았는데 정이 많은 사람이라 불리는 건 뭔가 모순 같다.  

 

 의아할 때가 있다. 마음이 텅 비었던 내게도 내어 줄 온기가 있다는 것이. 충분하지 않고 모자라도 베풀 수 있는 마음. 자기 삶도 팍팍한데 얼마 안 되는 월세 보증금마저 기부하고 생을 마감한 어떤 김밥 할머니처럼 나눔엔 역설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 걸까. 뭔지 잘 모르겠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어서 외롭기만 한 게 아니라 비었어도 따뜻한 나눔이 가능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 비 오는 날의 편지



엄마.

나한테 난치병이 있어.

바로 '엄마 없는 슬픔'이야.


증상이 참 다양해.

엄마를 생각하면 가끔 눈물이 나고,

그립고, 밉고, 허전해.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거야?

기쁜 마음만 가득 채워서

슬픈 마음을 덮으면 될 것 같은데

즐거운 일이 너무 적은 것 같아. 


시간에 기대도 안 돼.

어떤 상처도 아물게 만드는 시간의 마법도

예외는 있나 봐.   


엄마 없는 슬픔은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감정인 걸까.

괜찮은 듯하다가 불쑥 아픔이 밀려와.

갑자기 재발하는 아토피처럼.


그런데 엄마.

슬픔을 좀 더 안고 살아간다고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마음을 배우거든.


상처를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상처 주는 걸 싫어해서

저문 마음들을 마주하면

다시 반짝이게 만들고 싶어 져.

실망한 얼굴을 웃게 하고픈 감정이랄까.  


참 신기해.

슬프고 공허해도 내어 줄 마음이 있다는 게.

나눌 수 있는 마음은

엄마 사랑을 듬뿍 받아야 가능한 거잖아.


마음을 나누니까 희한한 일도 생겨.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

이렇게 불리는 게 낯설고 어색하지만 나쁘진 않아.

내가 따뜻한 사람이 된 것 같거든.


엄마.

사실 난 미지근한 사람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차고 슬픈 감정, 따뜻하게 나눌 수 있는 감정

모두 갖고 사는 사람이니까.

 

어중간해 보이지만 괜찮아.

미지근하다는 건

차가움 보다 따뜻함에 가까운 느낌이 들어서.   


따뜻한 사람으로 사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슬픈 감정이 아토피처럼 또 밀려올 테니까.

그럴 때마다 그 흔적들, 엄마가 모아 둘래?

아마 차곡차곡 쌓인 그 조각들이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의 크기일 거야.


나중에 만나면 다시 돌려줘.

엄마 사랑으로 말이야. 

그럼 진짜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